획 하나 빼고…살짝 뒤집고…짝퉁들 '배짱' 상표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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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친구가 목에 감고 있는 머플러. 이 머플러에 붙어있는 장식문양을 언뜻 보면 'F'자가 반대로 마주보고 있다.

영락없는 이탈리아 명품 '펜디(FENDI)'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개의 'F' 중 하나가 'ㄱ'자다. 획 하나만 빠졌기 때문에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유명 상표 모양을 교묘히 바꿔 상표등록까지 했다가 취소당한 사례가 지난 7년간 226건에 이른다.

특허청이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등록된 상표디자인들을 분석해 본 결과 다른 업체들로부터 이의신청이 제기된 사례는 총 306건으로 이중 74%가 '도용' 판정을 받았다. 도용의 대상은 대부분 해외 명품 브랜드였다. 모양의 일부를 조금만 바꿔 실제와 구분이 힘들도록 한 것부터 원래 상표 문양을 그대로 복제한 것까지 있었다. 가장 많이 도용된 브랜드는 루이뷔통이었다. 총 66건의 도용 상표가 나왔는데 루이뷔통의 상징인 겹쳐진 'L''V' 문양을 뒤집거나 아예 다른 모양으로 바꾼 것, 뒷 배경의 일부만 변형한 것 등 그 변형 사례도 다양했다. 그 다음이 14건이 취소된 구찌였고 ▶셀린느 13건▶살바토레 페라가모 11건▶샤넬 8건 순이다.

펜디.버버리.코우치.MCM.아이그너 등도 도용 사례가 적발됐다. 물품별로는 가방 등을 만들 때 쓰는 원단 디자인이 전체 취소건의 70%인 15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포장용지류가 39건▶의복류 12건▶침구류 10건▶사무용지류가 8건이었다. 상표도용 업체들이 꾸준히 상표등록을 시도하는 것은 출원만 해놓으면 일단 등록이 된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은 옷이나 신발같이 제품 수명이 짧고 유행에 민감한 제품을 효과적으로 보호해 주기 위해 출원이 들어오면 무심사로 일단 등록을 해주고 있다. 그 후 공고를 통해 다른 업체들의 이의신청을 받게 되면 신속한 심사를 거쳐 등록 취소나 유지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특허청 상표디자인심사본부 이대섭 사무관은 "심사관들의 눈을 교묘히 피해 상표 등록을 받아 보려는 도용 업체들이 줄지 않고 있다"며 "유명 상표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은 권리를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시장조사를 하고 특허청이 내놓은 디자인등록공보를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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