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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통의 담양 죽전공품|기술개발로 새 활로 찾아야|플래스틱제에 밀려 사양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4백년 전통의 담양죽세 공예품이 당국의 무관심 속에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전남 담양군 일대에서 생산되는 대나무는 전국 생산량의 19%. 174O년부턴 죽물시장 까지개설 되어 한국의 멋을 창조하고 있지만 국내 유일의 담양 죽물시장은 아직 노천시장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해 비라도 오는 날이면 습기에 약한 죽제품은 엉망이 되고 만다.
지난73년 1백50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보였던 담양죽세 공예품은 그 후 사양길을 걷기 시작, 81년에는 45만6천달러의 수출실적을 보이다 지난해에는 36만9천달러로 뚝 떨어졌다.
80년대 초까지도 5개회사에서 수출을 해오다 지금은 호남공예사 (대표 조석희)한 곳만이 외국의 주문을 받아 농가에 하청을 주어 가내 수공업 형태의 생산을 하고있다.
수출실적 부진에 대해 담양군 산업행정계장 정병석씨(52)는『플래스틱제품이 등장, 소비자의 기호가 달라진데다 중공 등 경쟁국이 국제시장에서 죽제품을 덤핑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주요 수입국이었던 미국에 수출한 대돗자리에서 벌레가 나온 일 까지 있고 나서는 이 곳 제품의 인기가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는 담양죽제품의 제조 가구 수는 군내에 만 2천81가구 대부분이 부업으로 종사하는 영세 농가다. 따라서 제품의 종류가 다양치 못하고 조잡하기까지 해 중공제품에 밀리고 있다.
가내 수공업을 하는 김연수씨 (42·담양읍 삼변리95의4)는『25년 동안 죽세공예품을 제작,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생활이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면서 『과감한 지원으로 사양길의 죽세공예품 산업의 활로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요즘은 젊은이들이 대도시로만 빠져나가는 바람에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부녀자들을 일당 3천∼5천원에 쓰고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국내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시 바뀌어 플래스틱제품보다는 위생적인 죽제품을 찾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죽세공예품 업계엔 더없이 반가운 추세다.
담양읍에서 상설 죽재품가게를 경영하는 유종환씨(40)는『서울 부산등의 대도시에서 관광객들이 버스를 전세내 무더기로 죽세공예품을 사가는 일이 많고, 외국 관광객들도 선물용으로 대돗자리등을 사가는 일도 있어 군 전체로는 연간 평균23억원 이상의 매상을 올린다.』 고 말한다.
현재 단양읍에는 6개의 상설 죽물센터가 있어 국내 수요를 어느 정도는 채우지만 대도시에 직매장을 설치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나 군 지원만으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다는 것이 백주원 군수의 설명. 백군수는『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기술 개발이 시급해 4월중에 업자들을 일본, 대만 등지에 견학을 보내 선진기술을 배워오게 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기술개발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연구기관 설립을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는 의욕이다.
기술 개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기계화를 위한 자금 지원. 농가에서 죽세공예품 생산업의 활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중·장기 저리의 융자가 절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민들은 자금난만 해결되면 농번기를 재외하고 연8개월 동안 작업이 가능하며 이에 따른 농가소득의 증대도 이룰 수 있어 1인당 연간 9백5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매년 5월∼20일까지 열리는 「죽제품 경진대회」를 통해 동업자간에 기술을 교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현재 죽세 기능 보유자는 인간문화재 31호 이동연씨(78·담양읍 향교리 225)와 제53호 김동연씨(87·담양군 향교리 10)가 월2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김기찬씨(29), 최재현씨(30)에게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그러나 죽세기능 보유자에 대한 지원이 적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담양은 영·호남을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의 시발점이기도해 제품 개발만 이뤄지면 판로에는 문제가 없는 편이어서 정부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절실하다. 【담양=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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