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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후폭풍] PD 저널리즘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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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언론학자들은 이번 PD수첩 사건은 그간 PD 저널리즘이 안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가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MBC 보도국의 한 고위 간부는 "PD 저널리즘은 심층적인 보도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게이트 키핑(보도를 거르는 과정)과 검증면에서 아슬아슬했던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 끊이지 않는 논란=PD들이 만든 시사프로그램이 물의를 빚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MBC PD수첩은 지난해 7월 재독 학자 송두율씨 관련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항소심 선고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대법원까지 우려를 표했지만 제작진은 방송을 강행했다. 실제 송씨에 대한 '변호 방송'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또 KBS '시사투나잇'은 올 3월 한나라당 박세일.전재희 의원의 누드 패러디를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파문이 커지자 코너 자체가 폐지됐다.

지난해의 탄핵 방송도 대표적인 예다. 방송 보도 대부분이 문제가 됐지만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예를 들어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 시위를 16차례 비춘 반면 찬성 시위는 한 차례만 내보냈다. 한국언론학회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PD들은 "시대정신을 대변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 "결론 정하고 가는 구색용 취재"=지난해 8월 KBS.MBC.SBS 시사 교양 PD 111명을 대상으로 한 의식 조사가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영 500회 기념 조사였다.

응답자들은 시사.고발 프로의 취재 관행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으로 '결론을 정해 놓고 진행하는 구색 갖추기식 취재'를 들었다. '비밀 녹취 등 은폐적 취재방법' '발언 내용의 왜곡'이 그 뒤를 이었다(그래픽 참조). 또 응답자의 약 60%는 시사 PD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균형 감각'을 꼽았다. 이번 PD수첩 파문은 이 같은 지적사항이 '문제'로 현실화된 사건이다.

◆ 실종된 저널리즘 원칙=보도(저널리즘)엔 엄격한 덕목이 요구된다. 균형을 갖춰야 하고 예단을 가져선 안 된다. 짜맞추기식 취재는 더더욱 안 된다. 언론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PD 저널리즘은 사실 확인과 검증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보다 제작자의 주관적 판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숙명여대 강형철(언론정보학) 교수는 "보도국 기자들은 부서 단위 또는 보도국 전체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검증을 받지만 PD들은 개별 단위로 취재하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과 의견이 혼재하는 것이다.

방송사 내부 구성원들도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KBS.MBC.SBS의 시사 PD들은 "PD 간에 협의하지만 사실상 개별 PD에게 전권이 맡겨져 있다"며 "책임 PD(CP)도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런 구조에서 보도 내용을 단계별로 확인하고 검증하는 '게이트 키핑'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실제 이번 PD수첩 파문 이후 MBC 내부에선 '게이트 키핑' 시스템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MBC의 한 간부는 "1990년대 중반까지는 자율성 확보가 구성원들의 최대 목표였지만, 지금은 이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며 "각종 권한이 지나치게 하향 이양된 상태"라고 말했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경향도 발견된다. 결론을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 과장 기법도 사용된다. SBS의 한 시사 PD는 "다른 대체물이 없기 때문에 목표로 정한 취재는 어떻게든 만든다. 내용이 부족하면 인터뷰를 따든지 재연으로 채운다"고 말했다. 연세대 윤영철(신문방송학과) 교수는 "PD 저널리즘은 흥미.즐거움.통쾌함.정의감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강조와 과장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재발 방지 시스템 갖춰야"=이화여대 이재경(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PD수첩 파문이 과거 논란을 빚었던 사건들처럼 미봉책으로 끝나선 안 된다"며 "외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한이 있어도 문제의 원인을 찾고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형철 교수는 "PD들이 취재에 나설 경우 기자처럼 취재 기본 및 윤리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나아가 선진국들같이 PD와 기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통합 인사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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