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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간 훅 250방 신화 … 복싱 정신 있는 후배 키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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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독일병정’ 김태식의 눈매는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들길 때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부천=김경주 대학생사진기자]

“1982년 9월 4일. 날짜도 안 잊어버리죠.”

 전 세계복싱협회(WBA) 플라이급(50.80㎏ 이하) 챔피언 김태식(59)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10개월 만에 잃었던 그는 대구에서 로베르토 라미레스(멕시코)를 불러 재기전을 치렀고, 힘겹게 12라운드 판정승을 거뒀다.

 “1라운드 끝났는데 머리가 핑 돌았어. 그런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관중석에서 들려오던 야유 소리까지 다 기억나요.”

 경기 뒤 4시간이 넘는 뇌수술을 받은 김태식은 더 이상 링에 서지 못했다. 그의 휴대전화와 체육관 전화번호 뒷자리가 ‘1982’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강원도 묵호(현 동해시)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던 그는 22세에 프로에 데뷔했다. 통산전적은 17승3패(13KO). 경량급 선수로서는 KO율(76.5%)이 매우 높았다.

 ‘작은 거인’ 김태식은 복싱 중흥기인 19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선수였다. 저돌적이고 시원한 스타일 덕분이었다. 80년 루이스 이바라(파나마)와의 타이틀전에서는 5분 동안 무려 250방의 훅을 날린 끝에 2회 KO로 세계챔피언이 됐다. 그해 그가 번 돈은 약 4억원. 당시 강남에서 집 열 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은퇴 뒤 김태식은 복싱계를 미련없이 떠났다. 프로모터와 방송사 등쌀에 선수들이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이 싫었다. 그는 서른일곱에 열네 살 연하인 양미선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아들 건희(23)와 딸 가희(21)도 얻었다. 가족을 위해 당구장·갈비집·커피숍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큰 돈을 벌진 못했고, 사기도 당했다.

김태식은 1980년 2월 17일 장충체육관에서 루이스 이바라를 2회 KO로 꺾고 WBA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 됐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공공누리]

 김태식은 “집사람은 내가 복서였던 것도 모르고 만났는데 참 고생했어. 식당 일이라는 게 밤낮없이 해야 하니까….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많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평범한 대학생이다. 잘 자라줘서 고맙지. 사실 아버지가 복싱을 한 것도 잘 몰랐어. 운동에 관심이 없어서 시킬 생각도 없었고, 본인들도 안 하더라”며 웃었다.

 김태식은 2007년 경기도 부천에 ‘김태식복싱짐’을 열었다. 엘리트 복서를 키우는 정통 체육관을 운영하고 싶어서다. 다이어트나 취미로 복싱을 하는 동호인은 받지 않고 권투선수 지망생만 뽑다 보니 회원 수가 20여 명 밖에 안 된다. 타산은 맞지 않지만 고집을 꺾을 생각은 없다. 틈틈이 운동을 한 김태식의 몸은 다부졌다. 기자에게 장난삼아 가볍게 날린 펀치에서도 힘이 느껴졌다.

 “요즘 애들은 운동하다 다치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병원에 가요. 의지가 약한 거지. 기자 양반, 복싱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정신이에요. 정신. 난 그게 있는 친구를 만들고 싶어. 가족한테 미안해도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지, 허허허.”

부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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