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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차라리 돈 받고 허가해 달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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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건축과 개발을 둘러싼 민원은 지방공무원의 두통거리다. 잘해야 본전이고 그렇지 않으면 독약이 되기 싶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신속한 행정지원이 필요하지만 허가를 둘러싸고 무고와 음모.흑막에 휩싸여 온전히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규정에 합당하게 처리해도 뒷소문을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그렇다 해도 건축.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공무원의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눈 감고 싶어도 그것이 현실인 걸 어떡하랴. 특히 수도권지역 일부 공무원의 수뢰 사건은 고위직에서부터 하위직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꼬리를 물고 이어져 왔다. '국민 참여형 민원행정' 또는 '클린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갖가지 제도 개선이 비리 소지를 제거하고 주민 불만을 줄여왔지만 그것은 한시적이고 제한적이다. 때가 지나면 제도의 빛이 바래고 부정이 되살아난다.

건설 민원을 담당하는 지방공무원에게 '큰 선물'을 하지 못한 대기업 간부가 어느 날 현장에서 쫓겨났다. 회사 측은 왜 정기적으로 '상납'하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간부를 질책했다. 그러나 이 신세대 간부는 세상이 달라졌고 사업 추진의 모든 과정이 합법적이므로 뇌물을 줄 이유가 없지 않으냐, 그래서 지금까지 담당 공무원에게 큰 선물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것이 탈이었다. 그 기업은 다음 공사를 수주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실을 까발리면 기업만 거덜난다. 사업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다.

최근 한 모임에서 몇몇 기업인의 하소연이 가슴을 때린다. 지방공무원이 주요 민원의 결재를 미뤄 기회비용 손실이 갈수록 커진다고 한다. 민원서류의 미비한 분야를 모두 보완했는데도 그 뒷소식이 감감했다. 그래서 '선물'이라도 줄까 하고 기회를 보고 있는데 아예 접근이 차단됐다. 기업인들은 주장하기를, 차라리 돈 받고 처리해 주는 공무원이 더 낫겠다, 아니 그런 사람을 더 훌륭한 공무원으로 치겨세워야 한다는 비아냥이 이어지기도 한다.

제도 개선으로 여러 가지 인허가 업무 관련 규정은 긍정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부 공무원은 '~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을 하지 않는다'로 해석해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일신상의 위기를 막기 위해 가장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민원업무' 처리는 곧장 감사 대상으로 올라가니 그 고역을 어찌 치를까 겁이 난다고 변명한다. 말하자면 왜 '×바가지'를 내가 뒤집어 쓰느냐,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논리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기업인이 보는 공무원상은 더욱 험악해졌다. 공무원이 '몸이나 편하자'는 생각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감사원 감사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최철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