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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양보다 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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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잇단 수입규제조치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현격한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황판단이 다른만큼 때로는 대화불통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2월중순 미대통령통상사절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한 「젠킨즈」백악관통상부자문관은 정부고위층과 경제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 오니까 미국이 무턱대고 보호주의벽을 쌓고 있다고 비난만하니 어떻게 된건가. 미국이 지름 조사하고 있는 한국상품은 단순히수입규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불공정거래여부를 밝히기 위해서다. 한국은 대단히 오해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물건도 팔겸 대한투자환경도 알아볼겸해서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을 데리고 왔던 그는 미측의 여러가지 수입규제에 대한 한국업계의 불멘소리를 듣고 융숭한 대접도 못 받은채 김포공항을 떠났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통상장관회담에서 미측은 『보호무역주의일환으로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불공정거래 되고있는 한국상품에 대해서 규제를 하고 있을 뿐이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슬금슬금 죄어가고 있는 수입규제를 완화시키려면 우선 그 보상을 파악하고 대응자세를 취해야한다.
정부의 일부 관계자나 업계대표들까지도 미국의 반덤핑 판정들이 그저 보호무역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한다. 특정품목의 반덤핑등은 이유야 어떻든 GATT(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의해서 당연히 제소할수 있으며 당사국은 그 내용을 조사할 권리를 갖고 있다.
미행정부가 한국상품이 정말 덤핑이냐 아니냐를 「사실」에 기초를 두어 「법률적」으로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측에 분명한 잘못이 있을 경우 이 조치를 완화시킬 재량권조차 갖지 못한다. 따라서 반덤핑의 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한국정부가 민간기업대신 섣불리 협상에 개입하려다가는 독금법에 규정된 담합행위로 조사를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나 기업이 밝혀내야 할 일은 미국기업들의 터무니 없는 반덤핑재소 그 자체다. 또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세련된 통상외교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대의회 뿐아니라 미산업계 및 노조에 대한 로비도 강화될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 통상관계자들은 한국관리나 기업인들이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 듯 항상 똑 같은 말로 협상을 벌이려든다고 못마땅해한다. 즉 분단한국의 방위비 부담이 얼마고 1인당 GNP가 아직 2천달러 미만이며 개발도상국 운운하는 식의 접근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GSP(일반특혜관세) 수혜를 계속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 대세다. 자수성가한 나라에 계속 온정을 베풀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등 선진국의 확고한 정책이다.
해보았자 별 수 없는 GSP 계속적용 주장은 오히려 미국측의 협상무기로 역 이용될 가능성이 많다.
미국이 GSP축소를 들먹일 때 마다 한국은 깜짝깜짝 놀라며 주요시장을 개방해주었다. 미국이 군침을 삼키고 있는 이른바 3C(카메라·컴퓨터·카피트)시장마저 조금씩 열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어차피 GSP혜택이 줄어들 것은 뻔하다. 문제의 해결은 GSP수혜폭이 줄어든뒤 어떻게 해야할지 대응책에서 찾아야 한다.
관련제품의 수출을 지속시키기위해 생산성향상·기술개발·원가인하방안에서 대책을 찾을 수 밖에 없다.
60년대말 미국으로부터 덤핑판정을 받은 일본기업들이 미국에 현지공장을 세워 착실히 기반을 다지고 일부는 국내제품가격을 인하해 덤핑제소의 위협을 피해왔다.
국내특정기업의 제품이 수출로 큰 재미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앝려지기가 바쁘게 제2, 제3기업의 동일제품이 소나기식으로 미국시장으로 몰려가고 불필요한 덤핑행위나 과당경쟁을 일삼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작년1월부터 9월말사이의 수출물량은 82년동기보다 13·3%나 늘어난데 비해 같은 기간에단가는 무려 5·1%나 떨어진 것은 덤핑수출에 기인한 것이다. 적자생존의 행동전략은 상품고급화로 제값을 받아내는데서 마련되어야 한다.
작년 한햇동안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무역에서 19억7천만달러의 흑자를 냈다고 하지만 그 실 내용을 보면 기뻐할 만한 일도 못된다. 한국은 가득률이 낮은 값싼 제품만을 수출한 대신 미국은 높은 가득률에 값비싼 기계류등을 팔아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거기에다 미국은 한국과 무역외수지에서 8억4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이 일본의 급성장에 미리 재동장치를 걸지못했던 잘못을 한국에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까지에는 일본기업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의욕적인 성장정책을 추진하면서 제2의 일본을 노린데대해 일본기업들이 내심 경계를 해왔으며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경제를 실제 이상으로 과대 평가했다. 정부의 과잉PR가 선진국의 대한 선입관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일본의 조선능력이 우리나라 방식으로 계산하면 2천만t이나 되는데 실제는 6백20만t으로선전되고 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2백20만t밖에 안되는데도 4백만t을 넘는다고 과대PR돼 필요 이상으로 유럽경쟁국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사면초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완제품대신 부품별 분리수출, 미국경기상황에 따른 수출량 조절도 더욱 필요해졌다.
미국에서는 ITC(미국제무역위원회)에 대한 반덤핑제소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이를 더욱 간소화해서 누구나 쉽게 제소할수 있는 길을 트려하고 있다.
거기에다 비록 어느 정부가 업계에 수출보조금을 지원한 사실이 없더라도 단순히 수출촉진정책 때문에 대미수출이 늘어나면 상계관세를 부과할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의회에 제출되어 있다. 한국의 경제사정과는 관계 없이 미국의 수입규제는 강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그럴 전망이다. <최철주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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