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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욕망이라는 종마 길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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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형경
소설가

한 남성은 한때 거리에서 익명의 여자 옆에 서서 걸어보곤 했다고 고백했다. 불특정 다수의 여자를 추행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자신의 내면이었다. 그는 몸집 큰 여자 옆에 서면 숨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받았기에 그런 자신을 실험해보곤 했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편안함과 성적 자극을 느끼는 여성 유형이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성의 성적 매력이 그녀의 외모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여성의 성적 매력은 여자에게 달린 게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달려 있고, 더 엄밀히 따지면 내면에 형성된 ‘대상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 좌우된다. 그 기준은 물론 내면에 고착된 초기 애착 대상의 이미지 주변에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시장이 남자에게 강요하는 과장되고 도발적인 성 이미지가 있다. 술이나 남성용품을 광고할 때 여성 모델을 내세워 성적 가능성을 암시하는 포즈를 취하게 한다. 매혹적인 여성이 유혹하는 눈빛으로 “내게 와봐요” 하는 자세를 취하면 남자들은 그 광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남성다움을 확인받는 듯 도취된다. 그 결과 남자들은 자신의 힘을 여자에게 양도한다. 성적 만족을 주는 대상, 섹시 아이콘을 만들어 숭배하면서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둔다. 여자에게 권력을 내어준 결과 필연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거기서 비롯되는 불안감은 다시 몸집 큰 여자에게 투사된다.

 우리나라의 ‘삼촌팬’들이 유독 어리고 연약한 여자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그 연장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시장의 마케팅 전략, 남자들이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는 오랜 행동 방식이 뒤섞여 남자의 영혼에 거듭 펀치를 날린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남자들은 다시 욕망을 오남용하고 싶은 유혹, 유희적 로맨스에 빠지고 싶은 충동에 이끌려 간다.

 “진실로 성숙한 남자는 자신의 성욕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욕망이라는 종마를 우리에 가둬놓은 사람이다. 종마를 우리에 가둘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욕망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뉴질랜드 심리학자 스티브 비덜프의 말이다. 우리 사회의 성을 둘러싼 담론들은 우리가 성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수용한 것처럼 성욕이 충동질할 때마다 그것을 행동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