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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기자의 미장원 수다] 그의 뒷모습에선 향기가 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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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봄기운을 느끼려 잠시 산책을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향긋한 향기가 코를 슥 스쳐갔습니다. '어? 이 좋은 향기는 뭐지?'하며 뒤를 돌아보니 살랑살랑한 스커트 차림의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사실 패션 스타일은 별다르진 않았습니다. 어깨를 살짝 넘긴 길이의 긴 단발머리에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와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스커트, 굽이 거의 없는 플랫슈즈를 신고 있었는데, 아마 여러 사람 속에 있으면 눈에 띄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가 풍기는 좋은 향기에 그 모습이 더 없이 여성스러워보이고 우아해 보이는 겁니다. 한 3초쯤 됐을까요. 그 짧은 시간에 좋은 이미지가 생겨버린 겁니다. 향기의 힘입니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향수를 입지 않은 여자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답니다. 그만큼 여성에게 향기가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향수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향이 나는 나무를 태워 연기를 몸에 배이게 하거나 향나무 즙을 몸에 발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때 승려들이 중국에 갔다 돌아오면서 향료를 가져와 귀부인들이 이를 담은 주머니인 '향낭'을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지금의 향수와 같은 형태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장갑 등 가죽과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금은 악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향기를 자신의 개성으로 표현하는 용도로 씁니다. 하지만 제가 길거리에서 만난 트렌치 코트의 그녀처럼 뒤를 돌아보게 할 정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향수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요. 미국 패션 저널리스트인 티시 제트는 자신의 책 『프랑스 여자들의 서랍』에서 프랑스의 유명 조향사 프랑시스 커정의 말을 빌어 "자신에게 맞는 향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면 화장품처럼 미리 향수 샘플을 사용해 본 다음에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매장에서 맡은 첫 향이 마음에 들더라도 자신의 체취와 섞였을 때 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향수 샘플을 며칠동안 계속 뿌려보고 그 향이 자신의 체취와 잘 어우러져 좋은 향을 내는지, 또 주변 사람들이 그 향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사람들이 나과 그 향을 불쾌해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커정은 "향수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향기로 내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순간,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는지 한 번 맡아 보세요. 향기인가요, 냄새인가요.

지금 서울 곳곳에선 벚꽃이 한창 피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이번 주말엔 벚꽃놀이를 나가볼 계획인데, 그때 꽃향기 가득한 향수를 하나 뿌려봐야겠습니다.

강남통신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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