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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아시아 경시, 일본 국민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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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후나바시 대기자가 한·일 관계와 동북아 미래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경빈 기자

한.미 동맹의 미래와 동북아 비전을 모색하는 '한.미 안보 세미나'가 1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본사와 브루킹스연구소, 서울국제포럼, 한.미협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세미나에서 한.미.일 3국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미래'를 주제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일본의 대표적 외교 전문가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60) 아사히신문 대기자를 김영희 본사 국제문제 대기자가 만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최근 "미.일 관계만 좋으면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전형적인 아시아 경시 태도 아닌가.

"그의 발언은 우선 사실과 다르다. 현재 미.일 관계는 강화되고 있지만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총리가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방문했을 때 격렬한 반일 시위를 만나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 뒤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총리가 77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외교'를 폈다. 경제.외교 일변도에 대한 반성에서 아시아 국민의 마음과 일본 국민의 마음을 여는 외교를 하자는 것이었다. 지금 일본에는 그런 사고가 필요하다."

-고이즈미 총리 주변에는 조언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는가.

"현재 그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고이즈미는 민주주의 리더라고 하지만 독재자와 비슷하다. 자민당 역사상 처음이다. 민주당이 견제 세력이지만 9월 총선에서 패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약하다. 소선거구 제도가 구조적으로 '고이즈미 현상'을 만들었다. 다만 내년 9월께 자민당 내에서 대항력을 가진 후보가 나왔을 때는 바뀔 수도 있다."

-그런 고이즈미 외교에 대해 일본 국민의 생각은 어떤가.

"4월부터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중국.한국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고립됐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쟁을 겪었던 50~70대가 걱정한다. 그들은 전후 일본이 아시아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아시아 국가들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이 일본의 성공 요인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고이즈미 총리가 이를 저버리고 있다며 불안해 한다."

-보수파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고이즈미를 부추기고 있는가. 그가 총리가 될 가능성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아베 장관의 생각은 고이즈미 총리와 비슷하다. '많은 전쟁에서 국가를 위해 죽은 일본인에 대한 동정과 그들 덕에 오늘의 일본이 있다는 데 경의를 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일본 국민 절반의 생각이기도 하다. 일본의 신보수파(네오콘)나 우익의 주장만이 아니다. 그래서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것이다. 아베 장관이 총리가 될 가능성은 반반이지만 그가 총리가 된 뒤 야스쿠니를 참배하면 사정이 어려워질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하는 것은 개인적 신조인가, 정치적 계산에서인가.

"정치적 계산은 전혀 없다. 그는 총리가 되기 전에는 야스쿠니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4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그 이유는 2001년 1월 그가 가고시마(鹿兒島)현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기념관에 간 데서 시작됐다. 그는 거기서 특공대원들의 유물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감상적이 됐다."

-아소 다로(麻生太郞)외상은 최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국가는 전 세계 191개국 가운데 한국과 중국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정말로 동북아의 협력 관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된다. 그는 무엇을 노리는가.

"그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우려하는 국가가 한국.중국만은 아니다. 동남아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다. 아소 외상은 차기 총리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다. 그는 두 가지를 노리고 그런 발언을 했다. 하나는 중국에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고이즈미가 최근 총선에서 압승한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 대한 단호한 자세였다. 그걸 보고 아소는 중국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하지 않으면 인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고이즈미에게서 '아소도 강단이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헌법 9조를 개정해 이른바 '보통 국가'로 가자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헌법 개정 움직임은 고이즈미 총리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개정은 어렵다고 본다. 지금 국민은 일본이 30년대의 군국주의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풍요로운 시대에 자라난 젊은이들에게 군국주의는 감각적으로 맞지 않는다. 60세 이후의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을 잘 알고 있다. 향후 5~7년간은 헌법 개정이 어려울 것이다."

-미.일동맹 강화는 수퍼 파워가 되려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인가.

"중국을 봉쇄하거나 견제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다. 미.일 모두 대만을 독립시키거나 중국을 자극하려 하지 않는다. 북핵.이라크 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미.일은 '전략적 경쟁'과 '전략적 파트너십'의 중간 지점에 있다. 중국의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일은 중국을 신용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힘의 균형이 중요하다."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선 북핵 해결이 전제조건인가.

"2002년 평양선언을 보면 핵문제가 해결되고 미국과 일본이 확인해야 한다. 고이즈미의 국교정상화 의지는 강하다. 그렇게 보면 그는 우익이 아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 정부는 열심히 잘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로 양국 관계가 어려워져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대화로 풀려 노력했다. 많은 일본 국민은 이를 평가하고 있다. 그런 자세가 유지되기 바란다. 동북아 역사 문제는 시간이 걸린다. 한국 정부가 냉정하게 중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한.미.일 삼각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국 지도자가 다시 인식했으면 한다."

정리=오대영 기자 <dayyoung@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후나바시는 …

아사히신문 대기자이며 일본 언론계의 대표적인 외교 전문가. 현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다. 80~90년대 아사히신문의 베이징.워싱턴 특파원과 워싱턴 총국장 등을 역임했다. 미.일 외교의 내막을 파헤친 '동맹 표류(同盟漂流)'등 10권의 책을 썼다. 일본기자상(94년), 제8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 신초(新潮)학예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게이오(慶應)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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