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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에 습격당한 난민캠프, 굶주림에 참수 공포까지 … IS서 재탈환한 티크리트, 군인 1700명 매장지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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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IS가 시리아 내 야르무크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장악했다. 지난해 1월 야르무크 난민촌에서 식량배급을 기다리고 있는 난민들. [야르무크·티크리트 AP=뉴시스]

“살아야 한다는 희망마저 잃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기다렸어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부터 5㎞ 떨어진 야르무크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살던 한 여성이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털어놓은 얘기다. 그곳 출신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볼 순 없었지만 젊은이들을 참수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슬람국가·IS가) 우리에게 캠프를 떠나라고 했지만 믿을 수가 없었어요. 떠난 이들이 살해됐다는 얘기도 들었으니까요. 민간인인 젊은이들을 붙잡아갔다는 얘기도요.”

 절망과 공포의 기억이다. 두 사람은 그나마 나았다. IS가 90%를 장악한 야르무크에서 탈출했기 때문이다. 건물 안에 갇혀 있다가 시리아군에 의해 발견돼 야르무크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야르무크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학교에 마련된 임시시설에 머물지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있다. 또 IS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경우는 그러나 수백 명에 불과하다. 야르무크엔 여전히 1만8000여 명의 난민이 남아있다. 이중 3500명은 어린이들이다.

IS의 주요 거점이던 이라크 티크리트에선 6일 이라크군 시신 1700구가 묻힌 묘지가 발견됐다. [야르무크·티크리트 AP=뉴시스]

 한때 16만 명의 거처였던 야르무크의 상황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나빠졌다. 다마스쿠스와 인접했다는 전략적 위치 때문에 2년여 간 정부군에 포위됐고 난민들은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다. UPI통신은 “그 사이 200명 정도가 아사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1일 IS가 야르무크를 급습한 이후 상황은 더 악화됐다. IS와 야르무크 난민촌을 통제해온 팔레스타인 무장반군 아크나프 베이트 알마크디스간 교전이 계속됐다. 시리아군은 IS를 소탕한다며 폭발물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난민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야르무크 난민촌을 지원해온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식량을 보낼 수도 없게 됐다. 크리스 군네스 UNRWA 대변인은 “야르무크에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다는 뜻이다. 의약품도 거의 없다”면서 “현장의 상황은 비인간적 상태마저 넘어섰다”고 전했다. UNRWA는 별도 성명에서 “야르무크가 지금보다 더 처참했던 적은 없다. 난민들 생명이 지금처럼 위협받았던 적도 없다. 모두 극심한 공포 속에 다 부서진 집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유엔 차원에서 6일 “인도주의적 접근이 허용돼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반향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야르무크가 IS로 인한 현재진행형 비극이라면 IS의 과거의 만행을 보여주는 현장도 나왔다.

 최근 이라크군이 탈환한 티크리트에서 이라크군으로 추정되는 집단매장지 12곳이 발견됐다. 지난해 6월 IS가 이라크군 포로 1700명을 ‘집단 처형’했다고 주장한 캠프 스파이처 인근이다. 당시 IS는 이라크군 포로에게 시아파인지 여부를 묻곤 시아파일 경우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지 중에 일부는 IS가 티크리트 장악 당시 본부로 썼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궁 안에도 있었다.

 시신 수습팀의 칼리드-알타비는 6일 낮 “오늘 첫 무덤을 팠는데 벌써 20여 명의 사체를 발견했다”며 “분명 스파이처의 희생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발굴하는 우리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어떤 냉혈한들이 1700명을 눈도 꿈쩍 않고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일부 사체는 뒤로 손이 묶여 있었다.

 이라크군은 시아파 민병대와 손잡고 3월 초부터 티크리크를 공략, 한 달 만에 티크리트를 탈환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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