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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80억 도로 유치" … 그 길 옆엔 의원 땅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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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05년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국가 예산으로 길천산업단지가 조성됐다. 산업단지엔 왕복 2차로의 진입로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강길부(울산 울주) 의원이 2007년부터 3년간 280억원의 예산을 유치해 4차로의 진입로가 또 생겼다. 강 의원은 2009년 자신의 의정보고서에 이 예산을 자신이 끌어왔다고 주장한 뒤 “기획재정부 담당 국장, 과장 등과 오찬을 하는 등 전방위로 설득한 결과”라고 했다. 진입로가 새로 생긴 뒤 개발 호재를 만난 주변의 땅값은 6만원에서 34만원(공시지가 기준)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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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팀 확인 결과 새 진입로가 끝나는 지점 300~700m 거리에 강 의원 소유의 땅이 4곳(4509㎡, 1366평)이나 됐다. 강 의원이 공개한 재산신고내역에 따르면 4곳의 땅값은 2004년 5283만원에서 올해 4억2349만원(공시지가 기준)으로 8배가 됐다.

 강 의원은 2006년 인천공항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선 건설교통부(현재의 국토교통부)에 “마곡 R&D 시티(서울 강서구 마곡지구)가 성공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국제 단거리 셔틀공항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서울시가 건교부와 추진하겠다는 기사가 났는데, 어떤 견해냐”고 물었다. 건교부 측이 “신중해야 한다”고 답하자 강 의원은 “(국제 셔틀공항이 되도록) 잘 검토해 달라”고 했다. 마곡지구엔 강 의원이 1978년에 사둔 땅(105평)이 있었다. 개발이 이뤄지면서 90년대 초 평당 148만원이던 공시지가는 2009년 894만원으로 올랐다. 강 의원의 땅은 2006년 SH공사가 13억원을 주고 수용했다. 건설교통부 차관(2000년 8월~2001년 4월)을 지낸 강 의원은 2006년 열린우리당 정책위 부의장이면서 국회 건설교통위원과 예산결산특별위원을 지냈다.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전남 여수을) 의원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호남에 2조원이 넘는 예산을 확보했다”고 밝혀왔다. 주 의원은 2014년 의정보고서에 여수 화양면과 소라면을 잇는 도로 확장공사용 지역예산 265억원을 따왔다고 밝혔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확장된 도로를 따라 주 의원의 땅 24곳(3010㎡, 912평)이 위치해 있었다. 확장 공사가 본격화되면 그동안 거래가 없던 주 의원의 땅은 대부분 국가에 수용돼 토지보상비를 받게 된다. 여수시장을 거쳐 3선 의원인 주 의원은 2012~2014년 국회 국토교통위원장(국토해양위원장)을 지냈다.

 국회의원의 권한 중 가장 큰 게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이다. 국회의원의 예산심의권이 올바르게 행사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본지 취재팀은 ▶국회의원 300명의 재산신고내역 ▶지난 10년간 정부예산안 원안 ▶국회가 수정해 통과시킨 예산안 ▶국회 상임위 속기록 ▶국회의원 의정보고서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유치한 일부 지역구 의원들에게서 예산이 집행되는 곳 2㎞ 이내에 개인 재산이 있는 경우를 발견했다. 사심(私心) 예산이란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강 의원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인데 뭐가 문제냐”며 “상속받은 농지들은 (예산 유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마곡지구와 관련된 국감 질의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 의원도 “수십 년 전부터 도로 확장 계획이 있었지만 전남도의 토지수용 예산이 부족해 매번 공사가 불발됐다”며 “땅이 길 옆에 있어 오히려 재산권 행사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직자의 사익이 공익적 책무와 부닥치는 상황을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은 개발 정보를 먼저 알 수 있고, 국정감사와 상임위원회·예결위원회 활동을 통해 정책을 바꾸고, 지역에 예산을 끌어올 수도 있다. 그래서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의 재산상 이해와 관련해 공정한 직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 야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우상호 의원은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근처에 본인 땅이 있다는 걸 알면서 예산을 늘리고 정부를 설득했다면 동료 의원이지만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민석 부장, 강태화·현일훈·이지상·김경희·안효성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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