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재 속에도 세력 키워왔는데 … '정상국가' 이란이 걱정스러운 이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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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오랜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침묵했다. 2일 이란 핵 잠정합의안 발표 이후 미국 백악관이 “역사적 합의”라며 들뜬 분위기와 대조됐다. 사우디의 한 관료는 “며칠 지나서 걸프협력회의(GCC) 차원에서 입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GCC는 사우디를 비롯,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오만·바레인 등이 가입해 있다. 미국의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공습에도 참여한 전통의 우방이다. 이들 국가가 며칠을 곱씹어야 할 정도로 이번 합의가 예민한 사안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이란 핵 협상 타결을 두고 (사우디 등 이들) 수니파 중동 국가들은 워싱턴이 안보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사우디의 살만 국왕에게 전화를 했다. 또 GCC 지도자들을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로 초청, 이란 등 중동 문제 전반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살만 국왕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합의는 중동의 지정학이 달라질 법한 변수다.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 땐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불렸던 이란이 이제 정상국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국제 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확대돼 왔다. 특히 미국이 IS에 대해 주저하는 사이 그 공백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메우면서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물론 이라크·시리아, 최근엔 예멘까지 이란의 세력권에 편입됐다. 게다가 최근엔 미국과 이란이 공조하는 모양새까지 연출됐다. 이라크군이 최근 탈환한 티크리트가 그 예다.

다른 중동 국가들은 이란이 서방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는것을 극도로 견제하고 있다. 사우디 등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이 예멘의 친이란 시아파 세력인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을 강행하는 이유다. 또 이집트 주도로 이들 국가가 아랍연합군을 창설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란이 정상국가화하고 나머지 세계에 다가갈수록 사우디 등은 그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더 강하게 싸울 것”이라며 “이 지역에서 타오르는 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멘에서의 싸움이 그 조짐이란 것이다.

 한편 이번 합의를 두고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반대했다. 3일 정부 차원의 긴급회의 이후 마크 레게브 정부 대변인은 “매우 매우 위험한 방향으로 가는 단계”라고 우려했다. 전날 성명에서도 “최종 협정이 이 틀에서 이뤄진다면 이것은 세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역사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모든 나라가 안보 위협 문제를 해결하도록 협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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