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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롯데의 강민호" 인기선수 응원가 2~3개 … 노래 알려주는 앱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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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0구단 체제로 치러지는 2015 프로야구는 사상 첫 800만 관중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NC-두산전. [뉴시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며. 야구는 덤으로 볼 수 있는 곳. 2015년, 한국 야구장에 대한 새로운 정의다. 야구장은 더 이상 남성의 공간이 아니다. 여성과 어린이가 더 중요한 고객이 됐다.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진화하고 있다.

잠실야구장 용품매장과 놀이방. ‘해탈’을 꿈꾸는 ‘보살’ 한화팬. 쓰레기봉투를 활용한 롯데의 응원. 유광점퍼를 입고 응원 중인 LG팬(위쪽부터). [중앙포토]

 ◆여성과 어린이가 타깃=지난달 31일 LG와 롯데가 격돌한 서울 잠실야구장. 경기장 입구부터 구단 상품을 파는 매장이 반긴다. ‘헬로 키티’를 간판에 내건 매장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핑크색. 모자·베개·팔찌·머리띠·방석·캐릭터 배지 등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소품이 즐비하다. 손님도 커플이 많다. 구단 로고를 분홍으로 새긴 여성용 유니폼과 모자도 인기다. 유니폼은 6만5000원에 이르지만 불티나게 팔린다. LG팬 이의령(42)씨는 “1년에 열 번 넘게 야구장에 온다. 유니폼을 입으면 더 경기에 몰입할 수 있다. 이 정도 투자는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장 안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방이 있다. 야구 관람에 싫증 난 어린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자녀를 맡기고 마음 편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8세, 7세, 4세 자녀를 둔 조경수씨는 “2013년부터 이용했는데 놀이방 덕분에 불편함 없이 야구를 관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형근 LG 홍보팀장은 “주말에는 레이디스데이·어린이데이를 진행한다. 올해도 대학에서 여성을 위한 야구 특강을 진행한다. 1년에 10곳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장은 음식과 함께하는 디너쇼이기도 하다. 잠실 야구장 입구에서는 삼겹살을 판다. 불판에 고기를 구워 포장해 준다. KFC, 버거킹 등 치킨과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 매장 앞에도 줄이 길다. SK 문학 경기장은 국내 최초로 외야에 잔디석을 도입했다. 또 경기장 내부에서 펍(Pub)을 운영하고 있다. 김종문 NC 콘텐트본부장은 “한국의 응원 문화에는 놀이 문화가 접목된 것 같다. 또 멀리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게 쉽지 않아 야구장에 놀러 오는 게 일종의 피크닉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더 놀라는 응원=미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프로야구를 시작했지만, 떠들썩한 응원으로는 세계 최고다.

 관중은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쉴 틈이 없다. 선수들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맞춰 개별 응원가를 부르며 정해진 안무를 한다. 인기 높은 선수는 전용 응원가가 2~3개에 이르기도 한다. 이걸 외워서 따라 하는 팬이 적지 않다. 여성 팬 이정은(31)씨는 “몇 번 따라 하면 금세 배울 수 있다”며 “야구 경기보다 응원을 하는 게 더 재밌다”고 말했다. 롯데 강민호의 응원가는 다른 팀의 야구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며 안무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면 야구장이 아니라 K팝을 공연하는 콘서트장에 와 있는 듯하다. 각 구단의 선수별 응원가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이닝이 바뀔 때에도 크고 작은 이벤트가 이어진다. 함께 관람 온 연인이나 가족과 키스를 하거나 춤을 추도록 유도하고, 카메라에 잡히는 팬에게는 선물을 준다. 한마디로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응원 풍경은 외국인 눈에는 더 유별나 보인다. 한국인 친구와 함께 야구장에 놀러 왔다는 영국인 로스 트웬델(35)은 “모두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응원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여행 왔다는 미국인 부부는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식 응원 문화에 대한 반발도 있다. LG 트윈스 팬 이시찬(26)씨는 “응원은 즐기지만 과도한 앰프 소리에 가끔 경기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야구장에서 치어리더가 철수하고 앰프 응원이 사라지자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반긴 팬이나 원로 야구인도 적지 않았다.

 ◆10개 구단 10색 응원=프로야구 역사가 깊어지면서 구단마다 독특한 응원 문화를 만들고 있다. 한화 팬은 ‘보살’이라고 불린다. 수년째 팀이 하위권을 맴도는 ‘고난’ 속에서도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서다. 목탁이 응원도구로 등장했다. 경기에 져도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패배의 아픔을 달래는 모습은 한화 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마냥 참기만 할 것 같은 한화 팬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으로 영입해 달라는 청원 영상을 만들고, 1인 시위까지 하면서 구단을 움직였다. 열혈 구도 부산 팬들이 ‘떼창(합창)’으로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풍경은 한국 프로야구 응원의 백미로 꼽힌다. LG 팬들 때문에 지난해 가을 번쩍이는 소재로 만든 LG의 유광점퍼는 품귀 현상을 빚었다. LG 팬들은 “올해는 유광점퍼가 아니라 유광패딩을 입어 보자”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 겨울에도 야구 하자고 서로 격려하고 있다.

 ◆잠복한 폭력성=1990년대 중반까지도 애매한 판정이 나오면 그라운드로 빈병과 쓰레기통을 던지는 팬이 적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팬들은 버스를 가로막고 감독을 불러내 즉석 청문회를 열었다. 86년에는 상대 구단의 버스를 불태우는 불상사가 빚어지기도 했다.

 KBO는 올해 경기장 안전을 강조하며 ‘B 세이프’ 캠페인을 시작했다. 주류 및 아이스박스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 구단에는 거친 응원 문화가 남아 있어서다. “운동장 안에서 맥주를 파는데 밖에서 가져오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부 팬 사이에서는 “구장 내에서 매출을 늘리기 위한 꼼수”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현실 공간과 달리 사이버 공간에서는 저열한 팬 문화가 활개치고 있다. 선수나 감독 비하는 물론 상대 팬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강타자 박병호(29)를 ‘국민 거품 박병호’라고 깎아내리고, 등산을 좋아하는 최희섭(36·KIA)을 ‘뫼이저리거’라고 놀려대는 건 애교 수준이다. 삼성의 팬을 두고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를 비하하는 막말을 하거나, 기아 팬을 지역 특산물에 빗대며 서로 깊은 상처를 준다. 스포츠를 통해 갈등을 푸는 게 아니라 지역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은 야구뿐만 아니라 프로 스포츠 전체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야구를 중계하는 포털 사이트에서는 요즘도 불법 스포츠 도박을 소개하는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보기술(IT)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액수 제한도 없고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베팅할 수 있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안송이 기자·오경진 인턴 기자 songi333@joongang.co.kr

[S BOX] 롯데 마!마!, 한화 뭐여~, KIA 아야~ … 지방색 짙은 상대팀 야유 구호

원정팀 투수가 홈팀 주자를 겨냥해 견제구를 던질 때 홈 팬들이 쏟아내는 야유 섞인 구호는 한국 프로야구 응원문화의 특징 중 하나다. 여기엔 팀 컬러와 지방색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외국인 투수와 신인 투수는 견제 구호에 기가 죽어 제 기량을 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롯데 팬이 ‘마! 마! 마!’를 외친 것이 견제 응원문화를 만들어냈다. 마는 ‘인마’의 경상도 사투리다. ‘하지마’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상대 팀은 물론 롯데 선수들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위력적이다. 2008년 4월 1일 부산 사직 홈 개막전에 등판한 베네수엘라 출신 투수 다윈 쿠비얀은 이 야유로 페이스를 잃었다.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5개의 안타와 2개의 볼넷으로 7실점 한 뒤 물러났다. 결국 한국 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팀을 떠났다.

한화는 ‘뭐여~ 뭐여~ 뭐여~ 야! 야! X팔린다 야!’로 비속어를 섞어 야유한다. NC 다이노스는 ‘쫌’이라고 외친다. 경상도 사투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구호다. 굳이 해석하자면 ‘그러지 마라’라는 의미다. 또 롯데 팬이 ‘마!’라고 공격하면 NC 팬은 ‘산!’이라고 대응한다. 두 단어를 합치면 ‘마산’이 된다. 넥센은 가수 방실이의 노래 ‘뭐야 뭐야’에 맞춰 야유한다. LG는 ‘떽! 떽! 떽! 앞으로 던져라’라고 외친다. KIA는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담긴 ‘아야 아야 날 새것다잉’을 구호로 쓴다. 삼성은 ‘마을래, 마을래, 마을래’라고 한다. ‘맞을래’라는 뜻이다. SK 와이번즈는 ‘야 그러면 안 되지’라는 구호를 쓰다가 김성근 전 감독 시절 요청으로 사용하지 않게 됐다. kt는 구단 응원단 차원에서 ‘왓 왓 왓’을 밀고 있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두산은 견제 구호가 없다. 두산 관계자는 “야구의 일부인 견제 동작에 왈가왈부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2015 대한민국 프로야구 팬문화
춤추고 노래하고 콘서트장 방불
외국인 "유니폼 입고 응원해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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