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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전업주부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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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구희령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구희령
경제부문 기자

안녕하세요. 영신이 엄마예요.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3년째네요. 솔직히 처음엔 ‘전업맘’을 만나기가 두려웠답니다. 주변에서 ‘워킹맘 왕따 괴담’을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엄마가 일하는 아이’랑 놀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 워킹맘만 쏙 빼놓고 연락을 돌렸다는 이야기 같은 거요. 그래서인지 “영신이는 엄마가 일하는데도 참 착하고 잘해요”라는 덕담을 들어도 ‘엄마가 일하는데도’란 말이 더 신경 쓰이곤 했어요. “워킹맘은 무조건 밥 사고, 커피 사고… 아무튼 인심을 사야 해”라는 조언을 직장 선배에게서 들었을 땐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고요.

 그땐 몰랐거든요. 저 같은 워킹맘을 배려하느라 전업주부도 힘들다는 걸요. 그저 나만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했었어요. ‘오후 6시에 학급설명회를 하면 어떻게 가란 말이야’ 속으로 투덜댔죠. 저보다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워킹맘을 위해 전업주부들이 가장 바쁜 저녁 시간을 양보한 걸 모르고요. 친정에 둘째 서둘러 맡기고 학급설명회에 왔다가 끝난 뒤에 다시 아이 찾아와서 부랴부랴 저녁밥 준비하느라 애쓴 얘기는, 눈치 보며 ‘칼퇴근’해서 헐레벌떡 학교로 달려갔다는 워킹맘들의 고생담에 묻혔죠.

 저도 그랬어요. 아침 등굣길 아이들 교통 안전을 챙기는 녹색어머니회 당번을 마치고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서둘러 출근한 저만 힘든 줄 알았죠. 워킹맘 빼놓고 전업맘들끼리 조용히 한겨울 찬바람에 떨며 ‘녹색 당번’을 두세 번씩 맡은 걸 모르고요. 급식 점검 당번이며 바자회 준비며 온갖 일들을 “워킹맘들은 바쁘고 힘드니까” 빼줘야 한다며 묵묵히 해오신 걸요. 운동회 때 제 아이 의상까지 갈아입혀 주신 것도 뒤늦게 알았어요.

  하긴 저도 여러분을 만나기 전에는 ‘전업맘=우아하게 커피 마시고 문화센터 다니는 부러운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입시를 앞둔 첫째 챙기기, 이제 6개월 된 막내 돌보기, 큰댁 제사에 시부모님 생신… 전업맘 역시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또 다른 ‘워킹맘’인데. ‘엄마 모임’을 금요일 밤에 하는 것도 워킹맘에 대한 배려뿐 아니라 평일에는 전업맘도 너무 바빠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는 만큼 더 분주할 텐데도 ‘같은 엄마’라는 마음으로 워킹맘의 짐까지 조용히 들어주고 있는 전업맘들. 친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 제가 좌충우돌하면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모두 우리 ‘전업 워킹맘’ 언니·동생들 덕분이에요. 쑥스러워서 한번도 제대로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지만 여러분은 제 마음의 기둥이에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구희령 경제부문 기자

◆워킹맘 칼럼 보낼 곳=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