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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월마트 '기업의 반란' … 동성애자 차별법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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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의 유명 기업들이 시민단체의 영역으로 뛰어 들고 있다. 애플·갭·옐프 등이 인디애나주와 아칸소주의 ‘종교자유보호법’에 전면전을 선포해 결국 법안 수정을 약속받았다. 종교자유보호법은 업주가 종교적 소신에 따라 동성애자 고객의 요구를 거절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한 법이다. 예컨대 게이 커플이 자신들의 결혼식 음식을 주문하면 소신에 따라 거부해도 문제삼지 않도록 한 법이다.

 논란이 커지자 아칸소주의 아사 허친슨 주지사는 1일(현지시간) 주 의회가 통과시킨 종교자유보호법에 서명을 보류하고 의회로 돌려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전날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도 종교자유보호법을 수정하겠다고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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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지사들이 잇따라 후퇴하는 이유는 이 법을 놓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이 반대하며 중앙 정치권의 이슈로 번진데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여론의 흐름을 전면에서 이끈 게 기업들이다.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애플의 팀 쿡 CEO는 지난달 28일 트위터에 “애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며 “인디애나주의 새 법에 깊이 실망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갭·트위터·나이키 등이 가세했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공개적으로 이 법에 반대한 기업은 1일 현재 17개다. 이들은 성명 발표는 물론 투자 중단, 여행 금지와 같은 국제 외교에 등장하는 ‘제재 조치’를 꺼내들어 주 정부를 압박했다.

 클라우딩 컴퓨팅의 대표 주자인 세일즈포스닷컴은 인디애나주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모든 행사를 취소하고, 직원들의 인디애나주 출장을 금지시켰다. 음식점 추천 서비스의 선두인 옐프의 CEO인 제레미 스토펄먼는 성명을 내 “차별을 조장하는 주에서 옐프가 신규 사업을 벌이거나 사업을 확장하리라 상상하는 자체가 비양심적”이라며 투자 중단을 예고했다. 기업체에 대한 평가 사이트인 앤지스 리스트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 짓기로 했던 4000만 달러짜리 사옥 건설 계획을 보류했다. 현지에선 건축 공사와 사옥 입주로 1000여 명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했다. 나이키는 “우리는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자랑스럽게 지키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인디애나주 라파예트에 공장이 있는 자동차 제조업체 스바루는 “차별을 조장하는 어떤 입법에도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적인 제약업체인 엘라이 릴리, 보험업체인 앤섬, 의류업체인 갭 등도 앞다퉈 성명 등을 냈다.

 기업들이 빈곤국 아동이나 이재민 구호 캠페인에 나서는 건 일상적이지만 동성애처럼 찬반이 분명한 사안에 개입하는 것은 흔치 않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일부 CEO들의 성명은 한 세대 전 시민운동가들을 연상케 한다”며 “논란거리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던 과거 업계의 전통적인 문화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기업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사회적 참여가 괜찮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라며 “이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생)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적 가치관이 분명한 기업들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에 동성애 차별 반대에 나선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옐프 등 컴퓨터나 인터넷 기반 기업이거나 갭·리바이스 등 동성애 문제에 대해 노년층보다는 거부 반응이 덜한 젊은 층이 주고객인 업체가 많다.

 그러나 잘못 나서면 역풍을 맞는다. 스타벅스는 지난달 커피 컵에 ‘레이스 투게더(Race Together)’라는 문구를 적어 고객에게 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가 중단했다. 인종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였는데 SNS에선 “커피와 인종차별이 무슨 관계인가”라는 비판만 나왔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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