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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염불보다 잿밥, 제사보다 젯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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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제사가 없는 날에도 잘 차려 먹을 순 없을까?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생겨난 게 헛제삿밥이다. 안동 지역 유생들이 글공부를 하다 출출해지면 제사 실습을 명분으로 하인들에게 제찬을 차리게 해 허투루 제사를 지낸 뒤 먹은 게 연원이란 설과 춘궁기에 내놓고 쌀밥을 먹을 수 없었던 양반들이 제사를 핑계로 성찬을 먹은 게 시초라는 설 등이 있다.

 이러한 유래로 인해서인지 헛제삿밥을 두고 ‘염불보다 젯밥’ 때문에 만들어진 음식 아니냐고 말하곤 한다. 불경을 외는 것보다 공양할 때 바치는 음식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므로 ‘젯밥’이 아니라 ‘잿밥’이 와야 자연스럽다. ‘젯밥’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차린 밥이고 ‘잿밥’은 불공할 때 부처 앞에 놓는 밥이다.

 맡은 일엔 정성을 안 쏟고 잇속에만 매달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거나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바르다. ‘염불에는 잿밥’ ‘제사에는 젯밥’이 뒤따라야 이치에 맞다.

 ‘재(齋)’는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거나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자 예불을 올리는 것으로 일반적인 제사를 가리키는 ‘제(祭)’와는 구별해 써야 한다. “조계종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조계사 대웅전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천도제를 봉행하기로 했다”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묘지를 마련해 안장한 뒤 사십구제를 지냈다”와 같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천도재’ ‘사십구재’로 각각 바로잡아야 한다.

 ‘천도재(薦度齋)’는 죽은 사람의 넋이 극락으로 가도록 기원하는 불교 의식이다. ‘사십구재(四十九齋)’ 역시 사람이 죽은 지 49일 되는 날에 지내는 천도재의 하나다. 이들 단어를 제사와 관련지어 ‘천도제’ ‘사십구제’로 흔히 쓰지만 올바른 용어는 ‘천도재’ ‘사십구재’다.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에는 ‘재’(영산재·수륙재 등), 죽은 이의 넋이나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인 제사(祭祀)의 의미일 때는 ‘제’(삼우제·위령제·추모제·석전대제 등)를 사용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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