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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소중한 위안부 할머니의 삶, 해외에도 알려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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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홍조 대표가 ‘마리몬드’ 표 텀블러를 손에 들고 익살스런 포즈를 취했다. 테이블 위 휴대전화 케이스와 그가 안고 있는 쿠션 모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 이미지들을 토대로 제작됐다. [신인섭 기자]

“난 꽃이 좋아. 이렇게 꽃을 만지고 있으면 기분도 좋고 아무 근심도 안 들고 참 좋아.”

 고(故) 심달연 할머니가 생전에 말했다. 납작하게 눌러서 말린 꽃잎들로 그림을 그리며 할머니는 소녀처럼 웃었다. 심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꽃을 참 좋아하던 한 ‘여인’이었다.

 압화(壓花)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원예 심리치료 과정 중 하나다. 윤홍조(29) 마리몬드 대표는 지난 2011년 말 대구의 한 비정부기구(NGO) 단체가 소장하고 있던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들을 봤다. 고 김순악·심달연 할머니의 작품이었다. 아름다웠다. 이름 있는 아티스트가 그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그냥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로부터 작품 이미지들을 받았다. 그 이미지들을 패턴화해 휴대전화 케이스, 텀블러, 공책 등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심달연 할머니의 작품은 올해 초 ‘수지 폰케이스(작은 사진)’로 돌연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걸그룹 미쓰에이 멤버 수지의 ‘공항패션’ 사진이 발단이었다. 수지의 공항패션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끈 건 그가 들고 있던 화사한 꽃무늬의 휴대전화 케이스. 이 케이스는 심 할머니의 압화 작품인 ‘병화’에서 이미지를 따온 것이었다. 케이스가 어디에서 파는지 알려지자 주문이 폭주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윤 대표다. “재고가 남아나질 않아 직원들 모두 우왕좌왕했죠. 아직도 수지가 어떻게 그 휴대전화 케이스를 쓰게 됐는지 미스터리예요.” 수지의 소속사조차 “수지의 개인 소장품이라 본인이 직접 구매한 건지, 팬이 선물한 건지 우리도 모른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대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그 전까지는 그저 위안부 이야기가 나오면 남들처럼 분개했고, 그러다 또 쉽게 잊었다. “역사 책이나 뉴스를 보며 분노했다가, 또 쉽게 잊혀지는 것. 이게 자신의 피해를 용기 내 밝힌 할머니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생각해 봤어요. 답은 ‘아니다’였죠.”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한·일간의 정치적 문제가 아닌, 여성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압화 작품을 보면서 할머니 한 분, 한 분이 ‘꽃’이라는 생각을 해요. 꽃은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자기 향과 색깔, 모양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잖아요. 때로는 누군가의 물리적 폭력에 의해 훼손되기도 하고요. 한 송이 꽃 같은 할머니들의 삶을 마리몬드라는 브랜드를 통해 하나하나 재조명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마리몬드는 이제 햇수로 4년 차 기업이 됐다. 좋은 일을 하며 이윤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래서 기업수익의 일부는 꾸준히 위안부 역사관 건립, 할머니들의 간병비 등으로 쓰고 있다. 요즘에는 대만·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중이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윤 대표는 늘 초조하기만 하다. 올해 초에만 벌써 할머니 두 분이 숨을 거뒀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제가 그저 바다에 돌을 던지고 있나 싶어요. 할머니들은 기다려주시지 않는데, 제가 일으키는 변화는 너무 미약한 것 같아서요. 그래도 계속 돌을 던지다 보면 그 울림이 언젠가 세상에 닿겠죠.”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3명이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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