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기자의 한끼라도] 솥밥 짓는 시간, 아침 18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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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이 막을 내렸습니다. 삼시세끼를 손으로 직접 지어먹는 '차줌마'의 모습에 전국의 주부들은 열광했죠.

하지만 현실에선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뭘 어떻게 먹는지에 대한 프로그램은 넘쳐나는데 정작 내가 내 가족과 밥 한 끼 먹으려면 고민이 앞섭니다.

결혼 2년차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심은 직장 동료와, 저녁은 업무 관련 미팅을 겸한 식사 자리로 채워집니다.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끼니는 아침 식사뿐이죠.

요즘 저는 아침마다 솥밥을 짓습니다. 무쇠 솥에 지은 밥은 전기밥솥에 지은 밥과 식감이 다릅니다. 밥알 하나하나가 탱글탱글하게 살아 있고, 수분을 적당히 머금어 씹을수록 단 맛이 납니다.

솥밥 짓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2인분의 솥밥을 짓는 데는 16cm의 무쇠 냄비가 하나 필요합니다. 깨끗이 씻은 쌀을 무쇠 냄비에 넣고 손등의 3분의 1정도가 물에 잠길 만큼 물을 붓습니다.

솥밥이 좋은 이유는 식감 뿐 아닙니다. 국이나 반찬을 따로 낼 필요가 없다는 게 더 좋은 점입니다. 저는 얇게 썬 표고버섯, 조각 낸 감자, 조갯살, 검은 콩을 쌀과 함께 솥에 함께 넣습니다. 재료의 짠 맛이 적당히 배어 나와 밥에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솥에 쌀과 다른 재료를 넣고 뚜껑을 닫은 후엔 불에 올려 끓입니다. 제 경우는 중불로 3분, 끓기 시작하면 15분을 더 끓입니다. 밥이 되는 18분 동안은 전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합니다. 출근 준비가 끝날 때쯤이면 주방 알람에서 18분이 지났다고 알려줍니다. 솥 채로 식탁에 올리고 그 위에 깨·김 등 갖은 재료를 조합한 맛가루(후리카케) 조금 뿌려주면, 보기에도 근사하고 맛도 좋은 솥밥 완성입니다. 솥 바닥에 누룽지가 눌어 붙어 밥을 다 먹은 후 솥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숭늉이 됩니다.

남자의 사랑은 가슴이 아니라 위장에 있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든든하게 밥을 먹고 나간 남편은 제가 쇼핑할 때 좀 더 기다려주고, 술 마신 날도 조금은 일찍 들어오고, 출장 갔다 오는 길에 김연아 립스틱을 사오는 등 여러 가지 보답을 해옵니다. 연애 시절부터 이랬던 건 아니니까 저는 사랑의 힘, 위장의 힘이라고 믿고 싶네요.

강남통신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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