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 기자의 미장원 수다] 옛날엔 비듬만 터는 미용사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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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백화점

지금은 '뷰티 살롱'이라고 부르는 미용실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한국에 미용실이 생긴 것은 1900년대 초반부터로 추정됩니다. 한국 여성이 댕기를 풀고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하기 시작한 것은 쓰개치마를 벗고나서부터인데요, 1910년 고종황제가 여성의 쓰개치마 착용을 폐지시키면서 이화학당을 중심으로 한 '신여성'들이 머리 모양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머리를 할 수 있는 미용실이 필요했겠죠.

조선인 1호 미용사 오엽주

1900년대 초반에는 일본인이나 러시아인이 운영한 미용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인이 처음 문을 연 미용실은 1933년 한국인 1호 미용사로 기록되는 오엽주 여사가 종로 사거리에 있었던 화신백화점에 만든 '화신 미용부'입니다. 당시 충무로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미용실이 6곳 정도 있었지만 한국인의 미용실은 단 하나였어서 장안의 화제가 됐다고 합니다.

1930년대에는 머리 모양에 변화가 많이 찾아 왔습니다. 댕기를 드려 길게 땋았던 머리는 30년 경이 지나자 거의 없어졌고 30년대 중반에는 단발머리가 유행했습니다. 검고 긴 머리를 자르는 것에 대해 당시 '망측한 일'이라며 반대도 많았다고 합니다만, 일부 선진 의식을 가진 개혁론자와 신여성들은 단발이 위생적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엔 평생 머리를 안 감는 사람도 있었고, 긴 머리를 손질하려면 머리 빗고 치장하는데 많은 노비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30년대 후반에는 웨이브를 넣는 파마가 인기였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약품으로 하는 파마가 아닌고 세팅을 해서 웨이브를 넣는 손질 정도였습니다. 모두 이화학당 학생들 이나 하던 일이지만 이 학생들이 당시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트렌드 리더 역할을 했기에 다른 사람들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파마를 하는 여성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자, 다시 미용실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오엽주 여사의 화신 미용부에는 일본에서 가져온 드라이어와 미용 기기가 있었고 가스 난방으로 더운 물이 나올만큼 최신 시설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용실에서는 어떤 시술을 했을까요. 파마도 많이 했지만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바로 '샴푸'입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에 한 두 번 목욕을 했습니다. 머리를 따로 감기는 커녕 평생동안 아예 감지 않는 사람도 많아 머리에 비듬과 이가 득실거렸죠.

해서 '샴푸' 즉, 머리감기는 화신 미용부의 중요한 시술 메뉴였다고 합니다. 샴푸 전 비듬을 터는 데도 30분 정도가 걸렸는데, 이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미용부에서 1년 정도 비듬 터는 기술을 배운 후에야 손님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고객 중에는 샴푸만을 원하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샴푸 비용은 당시 돈으로 1원50전~2원 정도였는데 파마가 20원으로 쌀 1~2가마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하니 꽤 비쌌습니다.

오엽주 여사는 신문과 잡지에 칼럼도 많이 기고했는데, 36년도 여성잡지 『여성』11월호에 머리를 감지 않고도 모발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했습니다.

영화 `상해여 잘 있거라`

'무슨 사정으로 머리를 감으시기 곤란하신 터이면 먼저 머리를 풀어 가지고 잘 가리신 후에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뒤적거려가면서 손질을 해서 비듬과 때를 긁어내고 다시 빗으로 훑어낸 다음 머리에 바르는 향수 <헤어로션>을 머리 밑바닥에 뿌린 후 다시 한 번 손질을 하여 두시면 정하게 때가 빠집니다. 이렇게 때를 빼고 나신 후에 양편 손가락으로 머리 밑을 쥐어 뜯는 것처럼 이삼분 동안만 마찰을 하여 두시면 모발에 매우 유리합니다.'

비듬과 때를 긁어내고 내라란 대목에서는 인상이 찌뿌려지지만 모발을 관리하는 방법이 지금과 많이 다르진 않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걸 보니 겨울에도 뜨거운 물 콸콸 나오는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강남통신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자료= 한국미용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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