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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북촌에 다시 부는 불길한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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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경험입니다. 구도심에 레지던스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찾아가 보니 번지 수는 맞는데 숙소 간판을 찾지 못해 한참 헤맸습니다. 출입문 옆에 아주 작게 간판이 있더군요. 외관은 100년쯤 돼 보이는데 막상 내부는 초현대적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일대의 건물은 함부로 증축하거나 외관을 바꿀 수 없으며, 튀는 색깔이나 간판도 할 수 없게 돼 있더군요. 다만 내부는 주거·상업용으로 편하게 얼마든지 고칠 수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런 식의 ‘겉과 속이 다른’ 건물 지구계획이 150년간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구도심을 보며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가회동·삼청동·계동 지역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북촌(北村)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조선시대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북촌의 인기는 ‘정주 한옥마을’에서 나옵니다. 실제로 주민이 거주하는 한옥 1200채가 밀접해 있습니다. 지금의 한옥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1930년대입니다. 집장수들이 큰 규모로 땅을 사들여 작은 한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생긴 한옥이 한때 2000채를 넘었습니다. ‘옛것을 알면서 새것도 안다’고 할까요. 이곳 한옥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산물입니다. 옛날 외관은 계승하되 유리·타일·함석 같은 근대적인 건축자재가 쓰였습니다.

 미술사가인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북촌의 토박이입니다. 그는 북촌의 변천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평온하던 북촌에 개발 강풍이 몰아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서울시가 몇 가지 고도규제를 풀자마자 한옥이 다세대주택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수 년 만에 1000채가 사라질 정도로 그 바람은 거셌습니다. 일부 주민이 시를 찾아가 호소했지만 바람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주 한옥마을의 가치를 알아본 주민들이 매물로 나온 한옥을 하나둘씩 사들여 보존하기 시작합니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북촌 가꾸기 운동을 합니다. 결국 시와 함께 ‘북촌 해법’을 찾아냅니다. 한옥의 아름다운 외형은 그대로 두면서 내부 수리는 허용하기로 한 겁니다. 일부 수선비는 시가 보조해 줍니다. 보존과 생활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이 나온 겁니다.

 요즘 김 교수의 마음은 꺼림칙합니다. 20년 전의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고 합니다. 2010년 지금의 ‘북촌 지구단위계획’이 세워졌습니다. 14개 구역으로 나눈 뒤 구역별 특색에 맞게 건물 높이나 용도를 정한 겁니다. 이 계획은 5년이 지나면 재정비할 수 있는데 그 시점이 바로 올해입니다. 이를 계기로 상가번영회와 지방의회는 보존 요건을 풀어달라고 강하게 요구합니다. 상당수 거주민은 이에 반대합니다. 갈등 조정을 위해 시와 주민들은 ‘북촌협의체’를 결성했습니다. 시는 지금의 계획을 유지하되 주민 불편사항과 규제 실태를 조사해 나중에 보완하자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의견 수렴 회의가 있을 때마다 고성이 나오고 실력행사가 선언되는 상황입니다.

 도시의 경쟁력은 산업과 함께 문화에 달려 있습니다. 문화는 예민한 풍선과 같습니다. 잘못 다루면 금방 훼손되고 맙니다. 최근 대학로에서 ‘상여’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대학로가 지나치게 상업화하면서 임대료가 올라가자 대학로의 상징인 소극단이 쫓겨날 판입니다.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은 또 어떻습니까. 유명해지자 독특한 수제 의류가게가 즐비하던 거리가 대형 상점과 음식점으로 뒤덮였습니다. 인사동 역시 정체불명의 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종로 피맛골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이번에 개발 유혹을 막아내지 못하면 북촌의 경관 역시 삽시간에 무너질지 모릅니다. 제2의 ‘북촌 해법’이 나와야 합니다. 답은 20년 전처럼 시민 스스로가 갖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