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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정의 High-End Europe]</br>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인 세상, 스페인 피게레스와 카다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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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피게레스(Figueres)는 스페인 여행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매력적인 곳이다. 초현실주의의 대표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곳으로, 달리 팬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달리 박물관이 있다. 피게레스의 달리 박물관은 미국 플로리다와 영국 런던 등에 있는 달리 박물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달리 본인이 깊은 애정을 갖고 기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각각의 작품은 물론 전시 방법, 외관까지 그의 화가로서의 독창성이 눈부시게 빛난다. 짙은 핑크색과 금색의 선명하고 화려한 건물에 수많은 달걀 장식으로 꾸며진 건물 만으로도 '달리스러운' 느낌이 든다. 달걀은 달리가 특히 좋아했던 오브제이다.

박물관에는 인상파, 미래파,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초기 작품과 초현실주의, 태평양 내 핵폭발을 주제로 한 작품, 과학에 대한 열정 등이 반영된 작품들이 있다. 지하통로로 이어진 보석 박물관에는 디자인 스케치뿐 아니라, 대표작인 '기억의 지속(Persistence of Memory)'에 나오는 흘러내리는 시계, 전화기 귀걸이 같은 독특한 아이디어를 화려한 보석으로 재현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박물관에서는 매년 8월에 '달리의 밤' 행사가 열린다.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야간 관람이 허용되는데, 다른 박물관의 야간 관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환상적이다. 박물관 자체가 또 하나의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달리가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부터 야간 감상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니, 피게레스 방문은 가능하면 8월에 맞추는 것이 좋다.

피게레스에서 달리의 예술에 대한 열정에 감동했다면, 카다케스도 빼놓을 수 없다. 카다케스는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지중해의 도시. 20분쯤 걸어 들어가면 작은 어촌 마을 포르트리가르티(Portlligart)에 달리의 집이 남아있다. 달리가 아내 갈라와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며 작업을 했던 곳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지붕 위의 달걀 장식 때문에 '달걀의 집'으로도 불린다.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한 달리가 낚시 장비를 보관하던 오두막을 사서 둘 만의 공방이자 집으로 만들었다. 장장 40년에 걸쳐 두 사람에 의해 개조된 집은 서로를 향한 애정은 물론 그들의 자유분방한 창조적 능력도 아낌없이 보여준다. 곰, 백조 등 동물의 박제를 거침없이 이용하고 침대에서 세면대, 작은 일상용품 하나까지도 도발적인 디자인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달리는 이곳에 자신과 친분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명사들을 비밀스럽게 불러들여 그들 만의 특별한 파티를 갖기도 했다.

카다케스와 피게레스는 바르셀로나에서 그다지 멀지 않지만 하루에 두 곳을 다 방문하기에는 그래도 조금 무리가 있다. 둘 중 한 곳을 방문한 후 피게레스의 두란 호텔(Hotel Duran)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이곳은 달리가 박물관을 짓는 동안 즐겨 찾던 곳이다. 호텔 레스토랑에는 지금도 달리의 지정석이 남아있고 그 자리에 앉아 식사도 즐길 수 있다. 1855년 여관으로 지어졌던 이 소박한 호텔에는 달리는 물론 백 년 전 스페인의 고풍스러운 모습도 남아있다.

◇여행정보=첫째 날에는 피게레스의 달리 박물관과 포르티가르티의 달걀의 집을 방문한 후 두란 호텔에서 숙박하며 달리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감상한다. 둘째 날에는 아주 특별한 런치를 즐기는 코스를 추천한다. 박물관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산트 파우 레스토랑(The Restaurant Saint Pau)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미슐랭에서 주는 별 3개를 받았으며, 럭셔리의 대명사 를래앤샤토(Relais & Chateaux)의 멤버로도 유명한 곳이다.

셰프 카르메 루스카예다는 카탈로냐 전통 요리를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이고 다양한 세계적인 트렌드를 반영한다. 산트 파우 레스토랑은 유리창 너머로 지중해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면 요리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벅찬 감동이 느껴질 것이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해안도로, 푸른 바다, 황금빛 모래사장, 그리고 레스토랑이 자리한 지중해 마을 산트 폴 데 마르(Sant Pol de Mar)의 아기자기한 길들을 산책하다 보면, 달리의 독특한 예술세계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감동적인 요리가 가슴에 더욱 깊이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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