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까지 쳐내며 부패 잡았지만 … 총리 자리는 세습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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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강력한 리더십으로 싱가포르를 ‘작지만 부강한 국가’로 만든 리콴유 전 총리.

 1965년 독립 당시보다 국내총생산 이 100배 늘어날 수 있던 토대에는 리콴유 의 카리스마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시대를 만든 인물’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키신저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사이즈로만 보면 작은 도시의 시장에 불과했지만 그는 국제 무대에서 글로벌 전략 질서에 대한 멘토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내로라할 장관·정치인들도 리콴유에게서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어했다. 그는 ‘리더들의 리더십 멘토’였던 셈이다.

 리콴유 리더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부정부패 척결이다. 1950년대만 해도 싱가포르에선 부정부패가 통했다.

 그는 자기 측근부터 성역 없이 조사하고 처벌할 것을 지시했다. 대표적인 예가 76년 부패 혐의로 체포된 국무장관 위툰분 사건과 87년 뇌물수수 혐의를 받던 태치앙완 국가개발부 장관의 자살 사건이다. 싱가포르인들 뇌리 속에 기억된 대형 비리 사건이다. 태치앙완 장관은 리콴유의 최측근이었다. 태치앙완 장관은 86년 정부가 수용한 토지를 매매하도록 도와주는 과정에서 80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조사국의 수사를 받았다. 리 전 총리에게도 인정에 호소했으나 구제받지 못한 태치앙완 장관은 결국 자살을 택했다. 리 전 총리가 손가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부정부패 척결에 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 전 총리는 인재 등용에서도 파격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능력과 업적 위주’로 인재를 뽑다 보니 싱가포르 정부의 중앙부처 국장에 20~30대가 다수다. 이런 리콴유의 리더십 덕에 싱가포르는 선진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지나친 독재로 권력과 부의 세습을 이뤘다는 비판도 나온다. 싱가포르가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엔 철권통치에 가까운 독재가 있다는 것이다. 무거운 벌금·태형 등 강력한 처벌로 사람들을 옥죈다는 평가도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의 태형은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인권침해의 대표적인 사례다. 싱가포르는 마약 소지자를 엄벌에 처하고 거리에 껌을 뱉다 적발되면 7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싱가포르는 ‘사형제가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소설가 윌리엄 깁슨 의 말을 인용했다. 싱가포르의 국민 행복지수는 한때 150개국 중 149위였다.

 정책 기조의 저변에는 마키아벨리즘이 있다. 마키아벨리즘 신봉자로 알려진 리 전 총리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될지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 사이에서 나는 늘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믿었다”며 “아무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의미 없는 존재”라고 했다. 한편 키신저 전 장관은 리 전 총리의 통치가 독재적이란 비판에 대해 “리콴유의 통치방식은 지금의 미국 헌법정신에는 못 미치지만 리콴유의 통치방식이 아니었다면 싱가포르는 지금의 시리아처럼 민족 간의 분열로 무너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인구 540만 명 가운데 이민자만 150만 명의 다인종·다문화 사회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어 “싱가포르 독립 초기에 적용했던 체제가 지금도 필요한지는 별개 문제”라고 했다.

 리 전 총리의 가족이 싱가포르 정·재계를 주름잡고 있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장남인 리셴룽 현 총리가 정계를 잡고 있다면 그의 부인인 호칭(何晶)은 싱가포르 최대 국영투자 회사인 테마섹 홀딩스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재계 실세다. 테마섹은 자산만 193조원에 달하는 국부 펀드로 세계 자산계를 좌우하는 큰손 중 하나다.

 리 전 총리의 둘째 아들 리셴양은 싱가포르 민간항공청 의장을 맡고 있다. 싱가포르는 물류의 허브인 만큼 민항청 역시 국가 경제 내 위치가 상당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자 칼럼에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하지 않는 경우 혼돈에 빠질 수 있다”고 평가하며 “리콴유가 남긴 숙제가 무겁다”고 덧붙였다.

고란·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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