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지시 한보수사, 김현철 구속 부메랑으로 돌아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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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97년 5월 17일.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구속됐다. 그해 1월 27일 YS의 지시로 시작된 ‘한보’ 수사의 결론이었다. YS가 “아들을 구속시키라”고 지시할 리는 만무다. 왜 이런 결론이 났을까.

 집권 5년 차를 맞는 YS는 전 정부의 비호를 받던 한보그룹이 5조원의 부채를 안고 부도를 내자 “한보의 사업 인가와 대출, 부도 처리 등 전 과정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를 공식 발표했고 전·현 정부의 실세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여론은 ‘김현철씨가 한보 사태의 배후’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YS는 결국 김기수 검찰총장에게 전화해 “혐의가 없으면 찾아서라도 현철이를 구속하라”고 지시해야 했다. 당시 현철씨의 혐의는 한보 사태와 무관한 ‘정치 자금에 대한 조세포탈’이었다.

 이처럼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는 부메랑이 된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했다. 200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5억 달러를 줬다는 의혹이다. 특검으로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DJ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여권은 두 개로 쪼개졌다. 정치 신진 인사들과 친노 인사들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됐고 국민회의는 구 민주당으로 쪼그라들었다.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의원은 “특검 때문에 DJ가 투석을 시작했고 나도 감옥에서 13번 수술을 받았다. 내 눈이 이렇게 된 것도 특검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논란이 야기한 ‘촛불 정국’에 놀란 뒤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박연차 게이트’로 불린 태광실업 수사다. 박 회장은 노무전 전 대통령의 후견인이었다. 수사는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졌고 야권의 단결을 불렀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사정에 대해 여론은 이미 경험적 기시감을 보인다. 특히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사정은 역효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 본부장은 “국면 전환용이어선 성공할 수 없고 장기 목표로 추진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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