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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사초리 개불잡이 '한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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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싸목싸목(천천히) 시작들 해봅시다.”

지난 20일 오후 전남 강진군 사초리 복섬. 양회길(50) 어촌계장의 말이 떨어지자 주민 150여 명이 일제히 갯벌로 향했다. 커다란 쇠스랑과 그물망을 든 주민들은 저마다 점찍어둔 자리로 달려가 갯벌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나이 든 동네 할머니들이 호미를 들고 능숙한 솜씨로 갯벌을 뒤적였다. 사초리 마을에서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 개불잡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 마을은 특산물인 개불과 키조개 등을 보호하기 위해 1년에 딱 한 차례만 복섬을 개방한다. 1년 중 가장 물이 많이 빠지는 날을 골라 2~3시간 작업에 나서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 복섬에서 나오는 개불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고혈압에도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건강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개불을 잡기로 한 날이 정해지면 전국에서 일제히 구매 예약이 몰린다.

보통 2인1조로 이뤄지는 개불잡이는 두 사람의 호흡이 생명이다. 한 명이 쇠스랑으로 갯벌을 파헤치면 다른 한 명이 잽싸게 뜰채를 밀어넣어 개불을 받아내야 한다. 주로 남편이 쇠스랑질을 하고 부인이 개불을 골라낸다. “부부간 금슬이 좋을수록 개불을 많이 잡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금석(63)씨는 “전날 부부싸움을 했어도 복섬에만 오면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들 한다”고 했다.

개불잡이는 사초리 주민들에게만 허용되는 일종의 전매특허 사업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구당 2명씩만 나와 개불을 캘 수 있다. 이날 외에 복섬에서 어패류를 캐다 적발되면 3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복섬은 사초리에서 배로 5분가량 걸리는 4만7405㎡ 크기의 무인도다.

사초리 주민들이 1년에 한 번만 개불을 캐기로 한 것은 어족 보호와 자연산란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공감했기 때문이다. 사초리 주변에선 15년 전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줄면서 개불이 자취를 감췄다. 이후 2005년부터 다시 개불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민들은 연중 딱 한 번만 잡기로 약속했다. 2012년엔 개불 수가 줄자 아예 개불잡이를 취소하기도 했다.

“열렸네. 열렸어. 개불밭이 열렸당께.” 30여 분이 지나자 섬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황금빛 개불이 무더기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개불은 불그스름한 색깔이지만 막 잡았을 때는 갯벌 특유의 색과 맞물려 노란빛이 돈다. 그래서 사초리 주민들은 복섬을 황금밭 또는 보물섬이라 부른다.

삽질 한 번에 10여 마리씩 건져올리는 주민도 적잖다. 복섬 개불은 1마리당 1500원이 넘는 최상품이어서 한 삽에 족히 1만원어치 이상 잡히는 셈이다. 이날 사초리 주민들은 2시간30분 동안 1억1000만원어치의 개불을 잡았다. 대부분 사전예약한 외지인들에게 택배로 부쳐졌다. 주민 조현호(63)씨는 “아무데나 갯벌을 파는 듯 보이겠지만 한쪽 발로 바닥을 천천히 짚어보면서 개불이 있을 만한 데를 골라 파야 한다”고 귀띔했다.

강진=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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