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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 속도 달라졌지만 … 여전히 붕어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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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버스 정류장 앞 리어카에서 붕어빵을 굽기 시작하면 ‘드디어 겨울이 시작되는구나’ 깨닫게 된다. 검은 철판에서 이리 한 번, 저리 한 번 몸을 뒤척이며 구워진 붕어빵은 모양은 투박하지만 안에 달콤한 팥을 품고 있어 직장인의 허기진 출퇴근 시간을 따뜻하게 달래주는 겨울철 별미였다.

그런 붕어빵이 지난겨울부터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사계절 디저트로 다시 태어났다. 1000원에 3개를 살 수 있던 가격도 달라져 한 개에 3000원짜리 고급 붕어빵이 등장했다. ‘한 입의 사치’라는 콘셉트로 속속 상륙하는 일본 디저트들에 맞서는 분위기다.

겉은 바삭한 크루아상 반죽을 사용했지만 속에는 한국산 팥을 넣어 친근한 맛을 살렸다(크루아
상 타이야키·사진 가장 위). 새콤달콤한 애플망고·로투스 크런치 잼을 속에 넣어 젊은 층을 겨냥했다(프랑스에 다녀온 붕어빵·사진 가운데, 아래). [강정현 기자]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크루아상 붕어빵 =지난겨울 문을 연 ‘크루아상 타이야키’와 ‘프랑스에 다녀온 붕어빵’은 프랑스빵인 크루아상 반죽을 이용해 붕어빵을 만드는 대표 브랜드들이다.

 지난해 12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지하 1층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던 ‘프랑스에 다녀온 붕어빵’은 월 매출 2억원을 올렸다. 통상 백화점 식품관 입점 브랜드의 ‘대박’ 기준이 월 매출 1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인기다. 브랜드 명은 ‘한국의 붕어빵이 프랑스에 놀러갔다가 크루아상을 만나 새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회사의 김효선 이사는 “‘프랑스=고급 명품’이라는 콘셉트를 반영하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했다. 팥, 애플망고, 로투스 크런치 잼, 인절미 등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속을 채울 수 있다. 가격은 개당 3200~3500원이다.

 ‘크루아상 타이야키’는 붕어빵의 원조라고 알려진 일본의 도미빵(다이야키) 브랜드 긴노앙이 2013년 9월 출시한 신제품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일본 본점에선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겨우 맛볼 수 있다는 소문난 맛이다.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 몰에서도 점심시간이면 길게 늘어선 줄을 쉽게 볼 수 있다. 개당 2800원인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선 하루 2000개 이상 팔리고 있다. 홍보팀 이가희 대리는 “붕어빵에 대한 향수를 가진 어르신들 중 단골이 많다”고 했다. 속은 현재 팥 한 종류인데 4월에 초콜릿을 이용한 신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크루아상은 강력분·달걀·버터·분유·설탕을 넣은 반죽을 손바닥만 한 크기로 네모나고 얇게 잘라 3~4번의 삼절접기(종이접기를 하듯 가로세로 세 번 접기)를 한 후 초승달 모양으로 구워낸 것이다. 찢었을 때 여러 겹의 결이 생기면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밀가루 반죽의 붕어빵이 시간이 지날수록 눅눅해지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 ‘서울 시내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 빵집’으로 소문난 ‘콘트란 쉐리에’ 서래점의 양승진 셰프도 “크루아상은 오븐에서 막 꺼냈을 때보다 두 시간 정도 지나 완전히 식었을 때가 가장 맛있고 식감도 제대로 살아 있다”고 말했다.

 이들 크루아상 붕어빵의 또 다른 특징은 겉에 ‘크리스털 슈거’라고 불리는 굵은 결정의 설탕을 뿌린다는 점이다. 주물 틀에 굽기 전 붕어빵 반죽에 설탕을 묻혀두면 붕어빵 겉이 반짝반짝 윤이 난다. 붕어빵을 먹었을 때 빵틀에서 미처 다 녹지 못한 크리스털 슈거가 오도독 씹히는 독특한 식감은 보너스다.

 홍대 앞에서 만난 카피라이터 김미선씨는 “금방 눅눅해져 붕어빵을 싫어했는데 이건 집에 갖고 가서 먹어도 여전히 바삭해서 맛있다”며 “좀 비싸긴 해도 원래 크루아상 가격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가격”이라고 했다. 기존의 붕어빵이 우유와 잘 어울렸다면 크루아상 붕어빵은 향긋한 버터향과 설탕 때문에 커피와 더 잘 어울린다.

‘아붕’의 아이스크림 붕어빵. [강정현 기자]

 한여름에도 맛있는 아이스크림 붕어빵=지난해 4월 문을 연 아이스크림 붕어빵 ‘아붕’은 ‘붕어빵은 한겨울에만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하늘을 쳐다보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서 있는 붕어빵에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얹고 초콜릿을 묻힌 과일을 꽂아 먹는다. 모양만 봐서는 8090세대에 가장 비싼 디저트였던 파르페를 닮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콘 대신 붕어빵 모양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붕어빵에는 당연히 속이 들어 있어야 하는 법. 특허 받은 주물 틀에서 굽는 아붕의 붕어빵은 속이 아래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 아래쪽엔 팥·고구마 앙금을 담고 위에는 아이스크림을 담을 수 있게 돼 있다. 반죽의 레시피도 특별해서 아이스크림을 담은 채로 30분을 있어도 과자가 젖지 않는다. 1개에 3000원씩 하지만 홍대점의 경우 하루 500~600개씩 팔리고 있다. 홍콩과 태국에도 진출했는데 현지 가격이 5000원을 넘지만 하루 600~700개가 꾸준히 팔릴 만큼 인기가 많다.

 130년 전통의 일본 다이야키 브랜드를 들여온 ‘아자부’에서도 아이스크림과 팥을 함께 채운 ‘아이스크림&팥 아이스모나카’를 맛볼 수 있다.

피자·소시지·불닭·참치를 넣은 붕어빵(해피소뿡이·사진 가장 위부터 네 번째), 비비고 ‘골드피시’(사진 가장 아래). [강정현 기자]

 피자·소시지·불고기·불닭…먹고 싶은 속은 다 담았다=전철역 안을 점령한 ‘해피소뿡이’의 특징은 다양한 속이다. 팥은 기본이고 피자·소시지·불고기·불닭·참치 등 웬만한 별미는 붕어빵 안에 다 넣을 수 있다. 미리 만들어 놓은 페이스트리 빵을 갈라 속을 채운 후 틀에 굽기만 하면 1분30초 만에 붕어빵 1개가 뚝딱 완성된다. 바쁜 시간엔 초벌구이를 해놓은 붕어빵을 전자레인지에 30초만 구워 제공한다. 당산역점의 최진주 사장은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전철을 기다리며 2~3분 만에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르게, 또 속을 든든히 채워 만드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브랜드 명 ‘소뿡이’는 작은 붕어를 뜻한다. 가맹점마다 갖춰놓은 속 종류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가격은 개당 2800~3000원 정도다.

한편 고급스러워진 붕어빵이 외국으로 진출한 케이스도 있다. 한식 브랜드 비비고는 트렌디한 레스토랑이 밀집된 런던 소호 매장에서 한국식 디저트로 붕어빵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 비비고 홈페이지에 ‘단팥으로 속을 채운 금붕어 모양의 한국식 와플’이라고 소개된 ‘골드피시’는 주문을 하면 커다란 한국식 도자기 접시에 붕어빵, 바닐라아이스크림, 산딸기, 블루베리, 아몬드 가루 등과 함께 담겨 나온다. 가격은 5파운드(약 8301원)다. 비비고 관계자는 “영국인들이 디저트로 와플을 즐겨 먹는 것에 착안해 ‘한국식 레드빈와플’을 콘셉트로 붕어빵을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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