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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보이스피싱 조직 사기친 겁 없는 20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이스피싱 조직을 등친 ‘겁 없는’ 20대들이 잇따라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기 등 혐의로 오모(22)씨 등 4명을 적발하고 이중 2명을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오모(22)씨는 지난달 중순쯤 중국 메신저 ‘QQ’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책이 돼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ATM은 하루 600만원밖에 못 뽑으니 은행 창구에서 직접 돈 찾을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면 수수료를 높게 쳐주겠다”고 제안했다. 오씨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지인 3명의 계좌까지 함께 넘겨줬다.

하지만 이는 모두 오씨의 의도된 계획이었다. 메신저로 '인출책이 돼달라'는 제안을 유도한 것도 오씨 본인이었다. 오씨 등 4명은 지난달 24일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해달라”고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지시받자 대구의 한 은행 영업지점으로 나갔다. 입금된 돈을 인출한 이들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던 30대 조선족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상반신 문신을 보여주고 폭행해 내쫓은 뒤 총 4680만원을 가로챘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신고를 접수 받고 통장주 역할을 한 오씨의 지인을 검거해 "친구들과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폭행해 내쫓은 뒤 돈을 우리가 가로챘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또 대포통장을 이용해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죄 수익금을 가로챈 혐의로 최모(28)씨 등 4명도 적발해 2명을 구속했다. 이들 역시 오씨 일당처럼 보이스피싱 조직을 속여 돈을 빼내는 대범함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은 계좌 제공자를 찾고 있던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들의 계좌를 넘기는 척 하면서 대포업자로부터 구입한 대포통장을 넘겼다. 해당 대포통장엔 연동된 현금카드가 2장 발급돼 있었으며 한 장만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넘겼다. 최씨 등은 나머지 현금카드 한 장으로 보이스피싱 조직보다 한발 앞서 범죄수익을 인출해 110만원을 가로챘다. 이 과정에서 계좌로 돈이 입금되면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경찰은 대포통장 공급업자를 검거해 수사하던 중 "대포통장을 사면서 현금카드를 두 장 만들어주고 문자메시지 알림 서비스를 요청했던 이용자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해 최씨 일당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인출책·계좌제공자 등을 가장해 오히려 보이스피싱 조직의 돈을 중간에 가로채는 유형의 범죄가 늘고있다"며 "이들을 '범행 도우미'로 이용하려 했던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임지수 기자 yim.ji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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