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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본 김정일 “상하수도 시설을 하지 않은 덕을 톡톡히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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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양에 아파트 10만호 건설을 추진하면서 상하수도 시설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이번이 처음이라 상하수도 시설을 미처 준비하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3만호 정도 준공한 상황이지만 상하수도 시설이 급해졌다. 여름철에 장마라도 찾아오면 큰 일이다. 북한은 우선적으로 중국산 상하수도 시설을 들여오려고 하지만 북·중 관계가 냉랭해져 그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간접자본(SOC) 가운데 기본은 상하수도 시설을 잘 건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하수도 시설을 잘 건설해야 장마가 오더라도 물이 제때에 빠지고 오수에 의한 도시의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평양과 함흥시의 경우 도시를 건설하면서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아파트만 많이 건설하다보니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고 도로에 물이 차서 주민들의 생활에 적지 않는 지장을 주었다.

2007년 8월 평양의 보통강이 범람해 많은 도로가 물에 잠겼다. 김 국방위원장은 건설부문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그런 일이 생겼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덕을 톡톡히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북한은 도시를 개선하는데 제일 고민거리는 과거에 건설해 놓은 상하수도 시설이다. 지금 평양도 마찬가지다. 김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다른 건설은 당분간 하지 말고 상하수도 시설을 보수·정비하는데 달라붙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10만호를 짓는 과정에서 이 문제까지 해결하려고 하니 자재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건설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 새로 나온 구호가 ‘평양 속도’다. 이 말은 1958년 평양시를 건설할 때 등장했던 말인데 올해 재등장한 것이다. 속도를 내다보면 부작용도 따라오기 마련인데 지금은 속도가 최우선이다.

북한은 한국에 여러 차례 상하수도 시설을 보내달라고 정부가 아닌 민간인들에게 요청했다. 그래서 한국산 상하수도 시설이 북한에 전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태부족이다. 북한은 중국산보다 한국산으로 선호해 만족도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은 친환경적이고 중국산보다 통수성과 시공하기가 좋아 북한에서 인기다. 따라서 유지보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반영구적이고 경제성도 높다.

상하수도 시설 등을 포함해 북한의 SOC 건설은 한국 건설회사의 새로운 기회다. 최근 해외에서 고생하는 한국 건설회사들이 남북 관계가 개선돼 평양에서 제2의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될 날을 기다려 본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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