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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AIIB … 오바마 '아시아 회귀' 한국서 호된 시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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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의 업적으로 만들려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중동과 유럽에 집중했던 미국의 힘을 아시아에 재분배해 이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게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목표다. 그러나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놓고 중국이 반발한데 이어 중국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장이 가시화하며 미국의 주도권이 도전받고 있다. 한·일의 과거사 숙제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며 역내 동맹국간 갈등이 진정되지 않는 3중고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발표한 ‘2015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서 “미국은 태평양의 힘이었고 힘으로 남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한달여 만에 이 정책에 등장한 경제, 군사, 역내 협력 모두가 난제를 만났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서 ‘전세계적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제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체결도 되기 전에 AIIB라는 중국발 태풍에 직면했다. TPP는 미국 주도로 일본 등이 참여하는게 큰 틀이라면 AIIB는 국제 금융의 변방이던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금융 기구의 탄생을 뜻한다. 그간 AIIB에 반대해온 백악관은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참여를 선언한 데 이어 호주·한국의 합류 가능성이 높아지자 수세에 몰렸다. 잭 루 재무장관은 17일(현지시간) 하원 재무위 청문회에서 “다자 금융 체제에서 신인 선수들이 미국의 지도력에 도전하고 있다”며 위기 의식을 드러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어떤 새로운 다자기구라도 국제 사회가 마련한 높은 수준과 똑같은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며 중국이 좌지우지하는 기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 역시 “한국 등의 AIIB 가입 여부는 주권국이 결정할 사안”이라면서도 “참여국들이 앞장서서 국제적 기준을 도입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백악관 브리핑때 “미국은 가입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두 바퀴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다. 미국은 두 군사동맹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동시에 특히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해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견제하겠다는 전략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공개 반대하며 미국의 성역이던 아시아 군사동맹에 분기점이 왔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사드 배치 문제는 사드가 북한용인가 중국용인가의 논쟁을 넘어 향후 한미 군사동맹에 중국의 입김이 얼마나 작용할지 여부를 보여줄 가늠자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사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이 사드를 반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중국이 사드에 반대하는 이유를 묻는건가. 나같으면 중국에 묻겠다”며 일축해 버렸다.

 미국이 그리는 동맹국 간의 협력 강화도 한·일 관계에선 한계를 맞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5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한국·호주·필리핀 간의 상호 협력을 촉진시킨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의 아시아 핵심축인 한국과 주춧돌인 일본 간엔 과거사라는 난제가 계속된다. 미국 입장에선 한·미·일 삼각 협력은 과거사 갈등 속에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대한 중국이라는 외부의 도전과 동맹국간 갈등이라는 내부의 문제가 겹치는 현장은 한국이다. 결국 한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최전선이 됐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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