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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개·고양이 카페 느는데, 아이들은 오지 말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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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만 7세 미만 어린이를 동반한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경북 안동의 한 중국집 앞에 걸린 안내 문구다.

 낡은 연립주택을 개조한 식당 한쪽엔 난로가 있다. “위험하니 뛰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손님이 많다. 지난해 초 식당 안에서 놀던 아이가 손에 화상을 입었다. 다친 아이의 부모에게 “치료비를 주겠다”고 했지만 며칠 후 변호사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30년 동네 장사를 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는 식당 사장은 매출 하락을 감수하고 어린이 손님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린이를 받지 않겠다는 업소가 늘어나고 있다. 만 7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사절하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노키즈존(No Kids Zone)’ 업소다. 주로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 고급 가구숍 등이 많다. 가족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놀이방과 수유실을 마련했던 10여 년 전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인터넷상에서 ‘노키즈존’ 찬반 논란의 불씨가 된 사진.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온 손님이 변이 묻은 기저귀를 테이블 위에 놓고 갔다. [인터넷 화면 캡쳐]

 올해 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아기의 변이 묻은 기저귀를 커피전문점 테이블 위에 둘둘 말아 그대로 두고 간 모습이 화제가 됐다. 댓글 중에는 “유모차를 끌고 카페에 들어오는 엄마들이 흉기 들고 쫓아오는 좀비 같다”는 극단적 내용도 있었다. 다수의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보다 더한 일이 매일 일어난다” “테이블 정리 중 노란 소변이 담긴 종이 커피잔이 나와 폐쇄회로TV(CCTV)를 돌려 봤더니 아이 3명을 데려온 엄마가 바지를 벗기고 소변을 보게 하더라” “옆자리 손님에게 아이가 콜라를 끼얹어도 아이니까 이해해 달라는 할머니가 있었다” “화초 잎을 뜯고 있는 아이의 행동을 말렸는데, 부모로부터 ‘교육의 연장선’이라는 설교를 들어야 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

 이런 ‘불편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노키즈존’을 선언하는 카페와 식당이 증가하는 것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어린이 손님을 외면하며 밀어내기도 한다. 출입 금지 팻말을 붙이지는 않지만 어린이용 의자와 식기를 준비해놓지 않는 등 유아 및 어린이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어린이용 의자가 없는 강남의 한 고깃집을 이용한 김영주(38)씨는 “한 손으로 불판에 고기를 구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무릎에 앉힌 아이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며 “아이 데리고 올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활개를 치는 어린이, 이를 본체만체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철없는 부모를 향한 ‘업주들의 역습’이다.

 법원 판결이 노키즈존 확대와 연관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11년 한 식당에서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던 종업원과 부닥쳐 10세 어린이 손님이 화상을 입었다. 법적 공방 끝에 2013년 부산지법은 식당 주인과 종업원에게 “4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출입문에서 종업원은 미리 주의해야 했고, 식당 주인은 이를 교육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자녀를 돌보지 않은 부모의 책임은 30%로 봤다.

 노키즈존의 확대를 저출산 시대의 산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마디로 어린이가 별로 영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저출산으로 어린이 시장은 점점 줄고 있다. 오히려 매장과 고객의 타깃을 분명하게 정해 ‘노키즈존’을 마케팅 전략으로 삼기도 한다.

 서울 용산 경리단길의 한 경양식집은 테이블이 4개뿐이다. 가게 곳곳에는 구체적인 영업 방침을 써 놓았다. ‘미취학 아동 사절’ ‘추가 주문 금지’ ‘한 시간 이상 식사 금지’ ‘일행 없는 솔로 손님 입장 불가’ 등이다. 손님을 가려 받지만 “방해받지 않고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맛집”이라는 입소문이 났다. 저녁에는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다.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에 전시장을 운영 중인 한 가구점은 “손님들이 가구를 감상하고 여유 있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신혼부부 등 손이 큰 고객에게 집중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어린이 출입을 제한해도 법적 문제는 없다. 관련된 규제가 없어 업주가 자율적으로 운영 방침을 정할 수 있다.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애견카페, 애묘카페가 성업 중인 반면 저출산과 궤를 같이해 영·유아 및 어린이에 대한 서비스는 팍팍해지고 있다. 주부 김은진(33·여)씨는 “음식점 등에서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를 보면 나도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지만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나라 음식점 화장실 대부분이 청결하지 못한 곳이 많고 기저귀 교환대도 없어 아이를 밖에서 돌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정익중(사회복지학)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저출산과 1인 가구의 증가로 아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지면서 아이와 그 부모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어린이를 바라보는 기류가 ‘어린이 혐오증’으로 확대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노키즈존’을 시행하는 업소 중에는 주차금지 표지판과 유사한 유아 출입 금지 픽토그램을 붙여놓은 곳이 적지 않다. 굵은 빨간색 사선으로 어린이에 대한 거부감을 간명하게 표현하는 디자인이다. 서울대 서이종(사회학) 교수는 “아이를 배제하는 방식의 노키즈존은 결국 아이에 대한 차별”이라며 “레이시즘(racism:인종차별)만큼 심각한 ‘키즈시즘(Kids-cism)’ 현상이 우리 사회에 싹트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세대 강정한(사회학) 교수는 “노키즈존은 갈등과 분노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 층간소음 분쟁처럼 일상을 통해 다시 갈등이 증폭되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우리 사회가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공공기관이 아이를 배제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잘못이다. 하지만 영업공간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개인의 권리”라며 “노키즈존으로 인해 권리가 박탈됐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이 오히려 다른 사람(업주)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아이를 지도하고 보호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공익광고를 통해 전파하고, 교육부나 여성가족부에서 예절 모의 체험장을 만들어 공공 예절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춘근 목동아동발달연구센터 소장은 “노키즈존에 대한 논의를 계기로 아이의 안전을 중심에 두고 우리 사회가 공간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며 “노키즈존 논란을 ‘키즈 세이프티존(Kids Safety Zone)’을 정하는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영국인 31% “아이 동반했다고 식당 못 들어간 적 있다”

영국은 부모를 동반하면 어린이도 펍(Pub)에 출입할 수 있도록 1995년 개정법을 시행했다. 이전까지는 만 14세 미만은 들어갈 수 없었다. 영국 국영방송 BBC는 5년 전인 2010년 ‘부모를 동반한 어린이의 펍 출입’을 주제로 시청자 토론방을 열었다. 400건 가까운 댓글 중에는 “소란스럽고 우는 아이들 때문에 분위기를 즐길 수 없다” “펍은 어른들의 전유물로 남겨 둬야 한다”며 노키즈존을 옹호하는 주장이 반대 의견을 압도했다. 2011년 영국의 식당 리뷰 전문지 ‘하든스 가이드(Harden’s Guide)’는 어린이 동반 입장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다.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1%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식당에 입장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북미권에서는 ‘아이를 거부한다’기보다 ‘보호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영국과 달리 어린이는 술집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부모가 술을 마시지 않고 자녀를 관리한다고 해도 미성년자는 입장할 수 없다. 영화 관람 때 부모와 동반해도 연령 제한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다만 드레스 코드가 있는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운영 방침에 따라 ‘노키즈’ 안내를 하기도 한다.

 한국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조(25·미국)는 “한국에서는 부모와 함께한다면 뭐든지 허용되는 이상한 기준이 있는 것 같다”며 “아이가 나이에 맞지 않는 영화를 보고 심지어 선술집에 들어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는데 미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윤호진·안지은 기자·김지향 인턴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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