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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는 그림] 르느와르 '피아노 앞의 두 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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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앞의 소녀'(폴 세잔) '피아노 앞의 카뮈 부인'(에드가 드가) '피아노 레슨'(귀스타브 카이유보트)….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은 19세기 프랑스 회화와 소설 삽화에 자주 등장했던 테마다.

'피아노 앞의 두 소녀'는 프랑스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가 1892년에 그린 같은 테마의 연작 여섯점 중 마지막 작품이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리 루종은 작가의 화실에서 4천 프랑을 주고 이 그림을 구입했다.

당시 4인 가족 1년 생활비의 네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물론 국립미술관에 소장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불우했던 가정 환경 때문에 붓을 들어야 했던 르누아르는 1875년부터 '피아노 앞의 여성'이라는 주제에 탐닉했었다.

그림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금발의 소녀는 오른손으로 건반을 연주하고 왼손으로는 악보를 넘기고 있다. 갈색머리의 소녀는 피아노에 바짝 기대 있다. 입을 약간 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노래를 하고 있거나 음악에 흠뻑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악보 제목은 '즐거운 나의 집'쯤 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연주자인 동시에 청중의 역할을 한다. 연녹색과 살구빛, 핑크색이 달콤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실내 공간과 소녀들의 머릿결을 감싼다.

19세기 유럽에서 피아노는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의 상징, 피아노 레슨은 여성 교육의 필수 과목이었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에게는 좋은 여가활동일 뿐만 아니라 결혼과 신분 상승을 도와주는 매개체였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결혼 생리학'에서 아예 여성을 피아노에 비유했다. "여성은 쾌락을 연주하는 달콤한 악기다. 하지만 떨리는 줄에 익숙해야 하며 건반을 연주하는 자세와 운지법(運指法)을 배워야 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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