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담화, 청와대와 상의" … 검찰, 하베스트 우선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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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완구 국무총리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정부패 척결’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황교안 법무부 장관, 이 총리,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뉴시스]

이완구 국무총리가 12일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최근 방위산업 비리와 해외 자원 개발에 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이 총리의 대국민담화는 당초 예정에 없었다. 하지만 공군 전자전훈련장비(EWTS) 납품 비리와 관련해 이규태(66) 일광그룹 회장이 전날 긴급 체포되는 등 방산 비리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날 오전 급하게 일정이 잡혔다고 한다.

 담화에 포함된 내용은 광범위했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국정 현안을 파악하고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왔다”며 “국정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잔존하고 있는 고질적 부정부패와 흐트러진 국가 기강이란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위사업과 관련한 불량 장비·무기 납품 및 수뢰 ▶해외 자원 개발과 관련한 배임과 부실 투자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횡령 ▶사익을 위한 공적 문서 유출 등을 전면전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공교롭게 지난해 말 야당이 국정조사 요구 대상으로 내세운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가운데 2개 분야가 일치한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를 겨냥하고 있고, 지난해 12월 정국을 흔들었던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을 염두에 두고 공직 기강을 다잡겠다는 뜻도 담았다.

 당초 담화문엔 “‘부패와 전면전’을 선언한다”는 직접적인 문구가 포함됐다가 발표 직전 “표현이 세다”는 의견에 따라 빠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총리실 관계자는 “사실상 ‘부패와의 전면전’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총리는 “저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 정부는 모든 역량과 권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구조적 부패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내겠다”고 밝혔다.

 담화에 “특단의 대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표현만 있을 뿐 구체적 방법이 제시되지 않아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도 일각에선 나왔다. 하지만 여권 관계자는 “일회성 선언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총리가 ‘최근 드러나고 있는 여러 분야의 비리는 부패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다’고 말한 걸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총리의 담화는 청와대 측과도 사전에 상의한 것”이라고 전했다. 총리실에 앞으로 힘이 더 실린다는 걸 의미할 뿐 아니라 실제 ‘부정부패와의 전쟁’에서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담화 발표에 배석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상당한 기간 동안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수사를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며 “검찰도 최근 인사 이동을 마쳤기 때문에 심기일전해 수사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검찰은 전날 해외 자원 개발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재배당했다. 주로 대기업·정치인 비리 등 굵직한 사건을 스스로 인지해 수사하는 부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부실 인수로 1조700억원대의 투자 손실을 본 부분에 대해 우선 수사력을 모을 방침이다. 인수 과정에서 당시 하베스트 측 투자 자문을 했던 메릴린치 서울지점 상무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 김모씨였다. 이 총리가 거론한 ‘부패와 첫 번째 전쟁’이 공교롭게 전임 정권을 겨냥하게 된 양상이다.

 이 총리가 대기업 비자금 부분을 언급한 걸 놓고선 “사정 드라이브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총리실 관계자는 “사정정국을 만들려는 건 아니다”고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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