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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대 금리 시대 …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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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기준금리를 2%에서 1.75%로 내렸다. 사상 첫 1%대 금리 시대, 한국 경제는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밀물은 모든 배를 들어올린다. 금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경제 주체들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1%대 초저금리 시대는 정부와 한은은 물론 가계·기업 모두에게 지금과는 다른 새 패러다임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날 한은 금통위의 금리 인하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볼 때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각종 경기지표는 눈에 띄게 나빠졌고, 지난달 물가는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산업 생산과 수출은 하락·감소세인데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쳤다. 두 차례의 금리 인하와 정부의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되레 수그러드는 낌새가 뚜렷했다. 여기에 ‘수퍼 달러’ 회오리가 신흥국으로 몰려갔던 달러의 본토 환류를 부를 것이란 위기감까지 겹쳐 세계 각국이 줄줄이 정책 금리를 낮추는 상황이다. 이주열 총재는 “내수 회복이 생각보다 미약했다”며 “성장 잠재력까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금리 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금리를 내렸는데 바라는 쪽으로 경제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부작용만 커질 수도 있다. 당장 걱정은 가계부채다. 1089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빚이 ‘1%대 저금리’에 올라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철저한 모니터링과 대비가 필요하다.

 수퍼 달러가 몰고 올 환율 전쟁과 겹칠 경우의 파장도 만만찮다. 금리 인하는 자본 유출의 위험을 키운다. 한국 시장은 금융위기 때 외국인의 현금자동인출기(ATM) 역할을 했다는 트라우마까지 있다. 투기자본은 그런 트라우마를 적절히 공격하는 교활함과 잔인함을 갖추고 있다. 6월 또는 9월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에 맞춰 이런 일이 또 재발할 수도 있다. 펀더멘털이 괜찮고 외환 방패가 튼튼하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돈이 기업 금고나 가계의 장롱 속에만 머물러선 아무 효과가 없다. 올 1월 통화승수는 18.5로 한은이 물가안정목표제를 시행한 1998년 이래 최저였다. 통화승수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돈맥경화’부터 풀어야 금리 인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확 늘리는 획기적 방안들이 나와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각 경제 주체도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1%대 초저금리는 한국 경제가 그만큼 디플레이션 위험에 근접했다는 신호다. 정부는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를 통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정치권은 나라 존망이 경제 살리기에 달렸다는 인식을 갖고 ‘경제 뒷다리 잡기’식 구태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기업과 가계도 고령화·저출산·저성장으로 대변되는 1%대 초저금리 시대에 맞춰 성장 전략과 노후 계획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