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소식에 캄캄했던 미CI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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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2년 아르헨티나 군대가 포클랜드를 침공했을 때 당시의 영국외상 「캐링턴」경은 이 사실을 미리 탐지하지 못했다는 빗발치는 비난 속에 조용히 자퇴했었다.
이때 런던의 금융가에서는 자기들은 아르헨티나 군대가 침공할 것이란 정보를 갖고 있었다고 영국 외무성을 경멸하는 듯한 이야기를 신문에 흘려 보냈었다.
이에 대해 화가 난 영국 외무성은 이렇게 반박했었다. 『요즘처럼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시대에는 어떤 정보가 입수되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폭주하는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판단력이 문제다. 우리도 아르헨티나군이 침공하리라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침공하지 않으리란 정보도 갖고 있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지는「안드로포프」의 사망과「체르넨코」의 등장을 대 공산권 정보의 본산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까맣게 몰랐다는 보도를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의 경우도 CIA는 영국 외무성이 포클랜드 때 내세운 변명을 원용하고 싶어할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모스크바 주재 미국기자들이 「안드로포프」의 사망을 눈치채고 크렘린과 KGB의 건물에 심야까지 불이 커져 비상사태에 돌입해 있음을 확인한 다음까지도 CIA쪽에서는「안드로포프」의 사망설이『근거 없다』고 논평한 것은 변명의 여지를 크게 줄인 것 같다.
최근 미국의 한 외교문제 원로는 미국 내 소련 연구가 쇠퇴해서 소련이 미국을 아는 것 보다 미국이 소련을 아는 것이 훨씬 적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레이건」행정부의 대소대결 정책이 소련 경시풍조를 몰고 왔다는 비난이 일어날 법하다.
소련에 대한 이런 미국 전문가들의 무지를 가장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 워싱턴포스트지의 원로평론가「필립·제일린」이다.
그는 14일자 해설에서 미국 언론들이 소련 지도층 후계문제에 대해 떠들어대는 분석을 이틀동안 듣다보니 지적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고백하고『진실을 찾는 것은 골프공을 정확히 맞히는 것과 같다』는 고「월터·리프먼」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이 지적 소화불량을 치유하는 첫 처방은『우리가 부가해한 대상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까지 냉소했다.
CIA는 정말 「안드로포프」의 사망을 신문기자보다 늦게 눈치챘었는지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정보원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무지를 가장했는지는 영영 수수께끼로 남겠지만 이 기회에 CIA나 미국 언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외부인식은 수정하는 것이 성숙된 태도일 것 같다. <장두성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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