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C에 "집안싸움"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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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의 국경과 장벽을 없애 명실상부한 지역경제공동체를 이룩하자는 목표로 지난 57년에 발족, 그 동안 착실하게 실적을 쌓아온 유럽공동시장(EEC)이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회원국간의 이해상충으로 심각한 불협화음을 낳고있다.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통합까지도 바라보던 유럽주의자(Eurocrats)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은 EEC가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미 재정문제를 둘러싸고 각 국간에 의견이 대립돼 작년의 EEC정상회담도 냉랭하게 끝난바있는데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회원국간의 무역장벽은 EEC존립에 대한 위기의식을 부채질하고 있다.
무역싸움은 보이지 않는 장벽 쌓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화물 운반차가 지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실력저지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1월 중순엔 수출용 양고기를 싣고 프랑스로 건너간 영국의 화물트럭 운전사 2명이 프랑스농민들에 납치되었다가 가까스로 풀려난 사건이 일어나 영국정부가 강력하게 항의, 「미테랑」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하고 그러한 불미스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까지 했었다.
그러나 수천 명의 프랑스농민들은 6일과 7일 또다시 육류를 실은 영국과 에이레의 화물트럭을 길에서 저지했다.
프랑스 농민들의 주장은 보조금을 받고 생산되는 영국 및 에이레의 값싼 고기가 들어와 가격이 폭락함으로써 자신들이 큰 타격을 받고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농민들이 사납게 나오는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프랑스가 영국을 상대로 우유를 수출하려 했었는데 영국 측에서 식품안전규정을 내세워 가로막았는데, 이 때문에 프랑스 농민들은 더욱 격앙돼 영국고기수입을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 밖에도 EEC회원국간에 벌어지고 있는 무역 분쟁은 숱하다.
이탈리아는 크바크라는 이름의 서독 산 치즈를 수입대상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들여오지 못하게 하고있다.
벨기에는 마가린을 네모난 튜브에 든 것만 수입토록 해 다른 EEC국가들은 벨기에에 마가린을 수출하려면 통을 바꾸어야 할 판이다.
또 덴마크산 베이컨이 프랑스 국경 세관에서 압류되고 농민들이 길에서 수입반대 데모를 벌였다.
서독은 모를 40g들이 묶음으로만 팔게 하고 있어 이 때문에 50g짜리 묶음으로 파는 다른 EEC국가들은 대 서독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좀 더 실감나는 것은 세금을 통한 저지다.
영국산 스카치위스키는 프랑스·이탈리아·덴마크 등지에서 높은 세금으로 두들겨 맞고있다.
프랑스의 경우 스카치위스키에 대해 포도주의 40배에 해당하는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있다.
프랑스는 또 공공입찰은 모든 회원국가에 대해 문호 개방하도록 EEC규정이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영국산 소화기의 경우 응찰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EEC의 관리들은 회원국 상호간에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을 개탄하고 있으나 자국 이익을 먼저 찾는 내셔널리즘에는 속수무책 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런던=이제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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