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이제는] 26. 부실 정리 덜됐다고 ‘우량’ 출범 안된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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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부터 직장 내 신용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해 온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3월 신협중앙회에 인가를 신청했다. 여윳돈이 있는 임직원들의 자금을 모아 돈이 필요한 직원들에게 주택자금 등을 낮은 이자로 빌려주기 위해서였다. 회사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사람이 중요한데 그동안 회사가 종업원의 복지를 위해 특별히 해준 게 없어 신협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결과는 감감무소식이다. 최종 인가권을 갖고 있는 금융감독위원회의 부정적인 입장 때문이다.

금감위는 신협 부실을 솎아내는 구조조정이 아직 진행 중인 상태에서 새로 인가를 내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위는 이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단 한 건도 신규 설립을 인가하지 않고 있다. 부안군청과 동원산업 등도 인가 신청서만 낸 채 몇 달째 대기 중이다. 최근 신협 설립을 위해 중앙회를 찾았던 중견업계 관계자는 "전체 직원의 3분의 2가 공인회계사인 삼일회계법인도 허가가 안 나는데 되겠느냐"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금감위의 말대로 신협 부실은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외환위기 이전 1666개에 달하던 신협은 현재 1050개로 크게 줄었다. 전체의 3분의 1이 문을 닫은 셈이다. 올해만 해도 종교단체 등이 운영하는 지역신협을 중심으로 5개가 문을 닫는 등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매년 국정감사에선 신협이 예금보험공사에 내는 예금보험료보다 신협 폐쇄로 예보가 대신 지급해주는 대지급금이 더 많아 예보기금 부실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빠지지 않는다. 금감위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는 점은 물론 신협 산업 전체의 수익성이 불투명한 것도 신규 신협 인가가 나지 않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업계의 부실을 이유로 우량 신협의 신규 진입을 막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작정 진입을 불허하기보다는 기존 부실의 정리와 우량 신협의 진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시장 전체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금감위도 직장 내 신협의 부실 가능성은 지역신협과 달리 극히 낮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외국어대 임기영(경제학) 교수는 "조합원의 구성과 설립 목적 등을 감안한 탄력적 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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