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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쁜 국회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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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국회의원·검사·공무원·기자 넷이 밥을 먹었다. 누가 밥값을 낼까?’ 오래전에 들었던 난센스 퀴즈다. 정답은 ‘식당 주인’이다. 이들 입법·사법·행정 3부와 언론계 사람은 우리 사회에선 전형적으로 ‘거저 얻어먹는 사람들’로 통한다. 청탁과 거래의 대가가 아니어도 잠재적 민원인들은 인간관계 관리 차원에서 접대한다.

 일본의 경제윤리학자 다케우치 야스오 교수는 이런 관행을 ‘새전(賽錢)형 증여’로 설명했다. 새전이란 일본인들이 신령이나 부처에게 습관적으로 바치는 돈인데, 구복의 의미도 있지만 액땜을 했다는 심리적 안정을 얻는 용도가 더 크단다. 한데 동양권에선 높은 사람들에게도 새전을 바치는 관행이 있다. 미움 안 받고, 혹시 모를 떡고물을 기대하며.

 문제는 자연은 새전을 바치든 말든 결과는 공평한데, 인간은 새전으로 쌓은 사소한 인연으로 사태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공직자들이 사사로운 이해관계로 법과 정책을 비튼다면, 이는 곧 대다수의 사회적 소외와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한데 뇌물이 아닌 관습은 처벌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질기게 살아남아 인간사를 흐트러뜨렸다. 이런 관행을 처벌함으로써 ‘은밀한 악행’을 근절하자는 게 ‘원시적 김영란법’이었다.

 지난주 이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데 법안은 너덜너덜해졌고, 의도는 일그러졌다. 법은 탯줄 끊자마자 각종 위헌 논란에 휩싸였고, ‘위헌심판’도 제기됐다. 그런 한편에선 이젠 따뜻한 밥술도 나누기 어려운 비인간적 사회가 될 거라는 한탄이 쏟아지고, 경찰국가가 될 것이며, 언론 탄압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한데 이 상태의 법으론 그런 ‘우려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데 한 표 던진다. 그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공짜밥을 먹을 수 있게 될 거다. 왜? 국회가 일부러 법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뒤 “위헌 소지가 크다”고 남의 말 하듯 우려했다. 돌이켜 보면 위헌 논란이 먼저 불붙은 곳도 국회였다. 그렇게 위헌 딱지 잔뜩 붙여 놓은 법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겠나.

 이런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다’는 비판여론이 쏟아졌다. 한데 그 처리 과정을 보면 국회의원들은 무지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았다. 선출직 공무원과 정당·시민단체 등엔 포괄적 예외 규정을 뒀고, 법 시행을 현역 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미뤘다. 특히 발의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이 법의 ‘엑기스’로 꼽은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아예 제외했다. 이 조항이 있었다면 국회의원에게 가장 많이 적용됐을 거다. 무지했다면 이렇게 쏙쏙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법 적용 대상을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법석을 떨면서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입법 생색은 내고 법은 사문화해 버리자는 ‘사악한 의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진작 눈치챘어야 했다. 국회는 애초 ‘무지를 가장한 기망’ 전술로 이 법이 기능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아니면 김 전 위원장 지적처럼 ‘국회의원 브로커법’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국회의원들은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247명이 몰려와 91.5%가 찬성표를 던지고, 뒤이어 열렸던 ‘어린이집 CCTV 의무화’와 ‘담뱃갑 경고그림’ 법안 표결엔 171명만 남아 부결시켰다. 목소리 큰 일부 이익단체는 기피했고, 대다수 국민은 원했던 법안이었는데 말이다.

 그동안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내며 민생법안 처리는 무산시켰던 국회가 자기들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 처리에선 여야가 놀랍도록 일치단결했다. 이번 사안은 우리가 표 주고 세금 내 먹여 살리는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국민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행위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화법을 빌리면 ‘참 나쁜 국회의원들’이다. 유권자로서 이대로 우롱당하며 살아야 하는지 심히 고민된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