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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악수할 땐 상대의 눈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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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논설위원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을 일반인과 구별하는 법. 상갓집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다. 국회의원은 악수를 하면서도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왜? 다른 누가 와있는지 훑느라 바빠서다. 그래야 눈도장을 많이 찍을 수 있다. 손은 당신을 잡고 있지만 눈은 다른 곳을 보며, 당신과 악수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상대를 찾아 손을 내미는 사람, 틀림없이 국회의원이다.’

 오래된 유머 한 토막을 말머리로 꺼낸 건 최경환 경제부총리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최 부총리가 내정됐을 때다. 사무관 시절부터 최 부총리를 봐왔다는 퇴직 선배 L은 그를 ‘뼛속부터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그는 경제 정책보다는 바깥 일(정치)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가 언론사를 거쳐 정치의 길에 들어섰을 때 주변에선 그가 ‘자신의 길을 마침내 찾았구나’ 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정 직후부터 그는 정치인처럼 경제를 말했다. 많은 이들이 ‘정치인 최경환을 버려야 한다’고 했지만 크게 귀담아 들은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당장 입에 단 것들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을 살려야 한다”며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인정비율(LTV) 완화를 얘기했다. 은행에서 돈을 쉽게 더 많이 빌릴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였다. 가계부채가 크게 늘 것이란 우려는 외면했다. 결과는 불문가지.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089조원, 규모는 물론 석 달 새 30조원 가까이 불어난 증가율도 사상 최대다. 최경환은 “가계 부채의 양은 늘었지만 질은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금융권에선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다시 DTI·LTV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는 강한 원화 얘기도 했다. “자기 나라의 화폐가치가 높으면 국민의 구매력도 올라간다”는 그의 말을 국내외투자자들은 ‘재무장관 내정자가 고환율을 포기했다’로 받아들였다. 원화 가치가 뛰고 시장이 요동치자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나서서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해명해야 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불안한 행보였다.

 8개월여가 지난 지금은 어떤가. 최경환표 경제 정책은 좌충우돌, 중구난방이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손은 이 사람과 잡았는데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격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최근 지난해 쓰다 남은 재정 10조원을 상반기에 전부 쏟아붓겠다고 했다. 지난주엔 소비를 살리는 데 꼭 필요하다며 최저임금인상을 들고 나왔다. 엊그제는 한국판 뉴딜 정책이라며 난데없는 민자사업 확대를 말했다. 다 과거 정부 때 해봤거나 정책 상호 간에 엇박자가 나는 것들이다.

 취임 초기부터 거슬러가면 더 정신이 없다. 돈 풀어 경기 살린다며 동원 가능한 돈을 긁어 모았고 한국은행엔 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했다. 명분은 “잃어버린 20년, 일본화를 막아야 한다”였다. 그 바람에 지난해 한국 경제엔 ‘일본화’가 유행어처럼 됐다. 경제 주체들은 잔뜩 오그라들었다. ‘경제는 심리’라는데 경제부총리가 앞장서 한국 경제를 ‘불황 프레임’에 가둬놓았으니 오죽했으랴.

 그러더니 곧 부동산 띄우기와 규제 완화로 눈을 돌렸다. 그것도 잠시, 올 연초에는 4대 부문 구조개혁에 올인한다고 했다. “노동개혁 없이는 경제 활성화도 없다”며 비장한 각오를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온갖 것을 건드렸지만 뭐 하나 손에 잡히는 건 없다. 아무리 우리 경제가 복합다중골절 환자 같아 명쾌한 처방이 어렵다는 현실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이런 우왕좌왕은 좀 과하다. 최경환은 이 정부의 경제 전략인 창조경제의 야전사령관이다. 스스로도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호언했다. 그런데 ‘그 나물의 그 밥’식 처방뿐이라니. 그야말로 ‘아니면 말고’가 아닌가.

 무애(无涯) 양주동 선생은 ‘박이정(博而精)’을 면학의 방법으로 꼽았다. 경제라고 다를까. 넓기만 해도, 깊기만 해도 안 된다. 만 가지를 차근차근 풀어놓되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최경환표 정책의 정(精)은 뭔가. 그것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언제까지 아무하고나 악수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건가. 이제라도 악수하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