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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갈등 확산의 '확성기'가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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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결단(?)을 내렸습니다. 무상급식을 끊고 남는 예산을 서민층 교육 지원에 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무상급식 1차 대전(大戰)은 2011년에 있었습니다. 진보 서울시교육감 후보였던 곽노현씨가 무상급식 공약을 내세워 당선되자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이를 주민투표로 몰고갔습니다. 결국 유효투표율 33%에 못 미치자 오 시장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무상급식은 야권 승리의 상징이 됐습니다.

 같은 무상시리즈지만 무상보육은 여권의 아이콘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습니다. 최근 정부는 무상보육 관련 예산을 임시국회에서 꼭 반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주로 야권이 장악한 교육감들이 무상보육 예산을 추가로 반영하지 않으면 과정 자체를 운영하지 않겠다고 나오자 이런 방침을 밝힌 겁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의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도긴개긴입니다. 그럼에도 지난 수년간 여야는 나쁜 복지, 좋은 복지로 편을 갈라 상대를 공격해 왔습니다. 여야의 갈등은 언론의 입장 차로 드러나곤 합니다. 홍 지사의 ‘결단’이 나온 다음 날 한 보수지는 지지 사설을, 한 진보지는 반대 사설을 내보냈습니다.

 한 장의 그림을 봅니다. 얼마 전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주관한 ‘갈등포럼’에서 서울대 이준웅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제시된 그래픽입니다. 언론의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확대됐음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 교수는 10여 년간 4개 일간지(보수지 2개, 진보지 2개) 1면 대통령 기사 중 부정적인 제목을 단 기사의 비율을 추적조사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조사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신문에 따라 정권에 대한 부정적 보도 비중은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정권에 따라 신문 논조가 널뛰기를 한 겁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그 폭은 더욱 크게 벌어졌습니다. 마치 확성기를 보는 듯합니다. <그림 참조>

 흔히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창(窓)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확성기 그림에 반영된 모습은 무엇일까요. 대중의 입장이기보다는 정치권력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언론은 사회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언론이 정파 갈등의 증폭자 역할을 해왔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언론학자인 이 교수는 “언론이 우리 사회 갈등을 통제하기보다 증폭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더군요.

 갈등 자체는 유죄가 아닙니다. 사회 깊숙이 숨어 있는 불만을 드러내 폭발하기 전에 해소할 계기를 제공합니다. 문제는 그 양과 방향성입니다. 한 사회의 적응력을 넘어설 만큼 일시에 쏟아진다면 또 퇴행적이라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갈등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조사에 따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5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아마 터키·그리스 다음으로 갈등이 심한 나라일 겁니다. 무상시리즈에서 보듯 보혁이나 좌우도 아닌, 특정정파의 입장에 서서 다툼을 벌일 때도 많습니다.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을 계기로 촉발된 갈등의 양상은 유치하기까지 합니다. 발레나 장구춤 추고 기원단식을 벌이거나, 김기종의 행위를 두둔하는 모습은 ‘불량’ 갈등입니다.

 확성기 그림이 보여준 갈등의 과거와 현재는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 주둥이가 더욱 커질 미래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확성기 볼륨을 좀 줄여야 합니다. 대안 지향적, 정책 토론적 갈등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오늘도 창을 열자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