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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자민당 개헌안과 ‘보통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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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확정된 자민당 개헌안의 초점은 제9조의 개정에 의한 군대 보유의 명문화에 있다. 현행 평화헌법의 핵심을 이루는 제9조는 '전쟁포기'(제1항)와 '전력(戰力) 불보유'(제2항)로 구성돼 있다. 자민당 개정안은 이 중 제1항은 현행대로 유지하는 반면 제2항을 개정해 '자위군(自衛軍)'의 보유를 명문화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자위군의 임무로서 일본 자신의 방위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 확보'가 명기된 점이다. 국제적으로 협조해 행해지는 활동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자위군의 활동범위를 해외에까지 넓힌 것이다. 또한 '긴급사태 시의 공공질서 유지''국민의 생명 혹은 자유 수호'도 임무에 추가됐다. 말하자면 테러에 대한 대처 명목으로 군대가 국내 정치.사회에 관여하는 길도 열리게 된 것이다.

제20조 신교(信敎)의 자유 조항에도 손질이 가해졌다. '사회적 의례나 관습적 행위의 범위' 내에서는 국가 및 공공단체가 특정 종교에 원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정교분리 원칙상 위헌 논쟁이 끊이지 않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염두에 둔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군대를 가지는 이상 그 희생자를 안치할 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민당의 당초 안에 비하면 최종안은 많이 '순화'됐다. 전문에 들어 있던 '애국심''국방''일본의 전통' 등의 용어들은 빠지고, 제9조 제1항의 '전쟁포기'는 유지됐다. 당내 보수 강경파의 주장이 억제되고 현실파 주도의 초안이 된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개헌의 현실적 가능성을 중시한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복고주의적 가치나 용어에 집착해 논란을 일으키기보다 야당도 끌어들여 군대 보유의 명문화라는 실리를 추구하려는 자세가 역력히 나타난 초안이다.

집권 자민당이 개헌안을 제시했다고 해서 당장 개헌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절차법도 없어 우선 국민투표법부터 제정해야 한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이나 야당인 민주당 내에도 개헌에 대한 이견이 아직 많다. 총선에서 압승한 고이즈미 내각이지만 개헌의 실현까지에는 많은 관문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아직 제9조 개정에는 신중한 여론이 지배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 그 자체에 대해서는 6할 정도의 다수가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헌법의 요체인 제9조에 관해서는 반대론이 다수를 차지한다. 10월 5일자 마이니치(每日) 신문 조사에 따르면 헌법 개정에 '찬성'은 58%에 이르지만, 제9조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가 62%로 '찬성' 30%의 두 배나 됐다. 일본 국민 대다수가 아직도 전쟁이나 군대 보유에 대해서는 뿌리깊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여론보다 정치권과 언론의 개헌론이 몇 발짝이나 앞서고 크게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근년 '우경화'와 개헌론이 힘을 얻어 온 데는 북한 위협론의 '공헌'도 없지 않다. 6자회담과 북핵 문제의 진전은 일본의 개헌 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