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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는 사라지지 않는다, 엄청 작아질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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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에이수스가 선보인 비보 PC. 너비 13㎝ 남짓의 작은 크기지만 일상적인 PC 작업을 할 수 있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5’에선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 인텔이 내놓은 초소형 PC에 관람객의 시선이 모아졌다. 길이 10㎝, 무게 42g에 불과한 막대형 PC인 ‘컴퓨트 스틱(Compute Stick)’이다. 시장에 나온 PC 가운데 가장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췄다. 램 1기가바이트(GB)에 저장공간 32GB, 운영체제 윈도 8.1을 탑재했다. 무선랜과 블루투스도 지원한다. USB처럼 TV나 모니터 단자에 끼우면 문서 작업이나 게임 등 웬만한 PC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인텔은 이달부터 89~149달러에 컴퓨트 스틱을 판매할 예정이다.

 책상 한쪽을 차지하던 데스크톱이 이제 사용자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간 데스크톱 하면 무겁고 큼지막한 PC를 떠오르기 마련이었지만 이젠 손바닥만 한 미니PC가 등장하며 이런 고정관념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PC업계도 ‘미니PC’로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다.

 미니PC는 지난해부터 다양한 제품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계 1위의 PC 제조국으로 떠오른 중국 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중국의 미고패드가 선보인 막대형 미니PC ‘미고 패드(Meego Pad)’는 인텔의 컴퓨트 스틱과 비슷한 형태다. 미국의 주요 온라인 장터에선 100~130달러 선에서 구입할 수 있다. 국내의 주요 IT 커뮤니티에선 미고 패드를 ‘해외 직구’로 구매해 써본 얼리어답터들의 사용후기가 올라와 있다. ‘일반적인 PC로 활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레노버는 골프공만 한 두께의 ‘싱크 센터(Think Centre)’, 에이수스는 머그컵 하나를 놓을 만한 크기의 ‘비보(Vivo) PC’를 출시하고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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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의 벤처기업인 마우스박스는 마우스 안에 PC를 넣은 ‘마우스 박스(Mouse Box)’라는 독특한 미니PC를 선보였다. 겉모습은 여느 마우스와 다름없지만 1.4㎓ 쿼드코어 프로세서, 128GB 플래시 드라이버 등을 갖춘 엄연한 PC다. 물론 마우스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밖에 델·조텍·기가바이트 등 글로벌 기업도 지난해 색다른 형태의 미니PC를 선보였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PC 출하량은 지난해 2분기부터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 덕분에 지난해 세계 PC 출하량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2013년도 출하량이 전년보다 10% 정도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완연한 회복세다. 여기에는 미니PC가 지난해부터 인기를 끈 것이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니PC의 인기는 높은 활용도에 있다. 예컨대 TV에 미니PC를 장착하고 무선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결하면 거실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있다. TV를 스마트TV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동성을 갖춘 점도 장점이다.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자리를 바꿔 작업할 때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또 회의실·공공장소에서 대형 스크린이나 빔프로젝터와 연결하면 손쉽게 각종 콘텐트를 공유할 수 있다.

 전통적인 데스크톱보다 공간을 덜 차지하고 복잡한 선을 정리할 수고를 줄여주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 면에서도 유리하다. 아울러 전력 소모와 발열·소음이 적은 데다 개성을 살린 디자인 제품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젊은 사용자층의 만족도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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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텍코리아 서만석 마케팅팀장은 “디지털 간판이나 전자칠판 등으로도 쓰임새가 넓어지면서 지난해보다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높은 사양의 게임·동영상을 구동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가격대가 25만~3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 대비 성능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사실 데스크톱의 콘셉트는 ‘모듈화’다. 여러 개의 부품을 합쳐 하나의 기기로 구성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다 보니 데스크톱은 메인보드를 중심으로 메모리·저장장치·CPU·그래픽카드 등을 끼워넣고 케이스를 씌운 형태가 일반적이다. 나중에 원하는 부품을 추가할 수 있도록 케이스 내에 여유 공간을 뒀다. 이런 여유 공간이 많다 보니 데스크톱이 그간 큰 덩치를 유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운드·네트워크와 같은 핵심 기능이 메인보드에 내장되는 추세다. USB 포트로 연결해 각종 주변 기기를 사용하기가 편리해지면서 PC 내부에 부품을 추가할 이유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PC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부피를 줄이기가 쉬워졌다. 성능도 크게 좋아졌다. 초창기에 나온 미니PC는 사용에 제한이 많았지만 요즘 등장한 미니PC는 주요 부품의 성능 개선으로 데스크톱의 거의 모든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향후 데스크톱은 게임·디자인 등을 위해 높은 사양을 갖춘 ‘전문가용’과 딱히 높은 사양이 필요 없는 ‘일반용’으로 구분이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니PC의 제품군이 다양해지고, 그에 맞는 성능 개선이 이어지면서 머지않아 일반용 데스크톱의 수요를 미니PC가 대체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에 미니PC는 침체한 PC시장의 새로운 ‘활력소’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 시장이 크지는 않지만 많은 제조사가 미니PC 완제품과 부품을 선보이며 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데스크톱 시장의 1%에 머물던 일체형 PC가 지금은 데스크톱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미니PC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얘기다.

 인텔코리아 관계자는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기존 데스크톱 시장이나 경쟁이 극심한 노트북 시장에서 벗어나 미니PC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며 “앞으로 데스크톱은 고사양을 지향하는 ‘하이엔드’,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일체형(올인원)’, 그리고 미니PC의 세 가지로 카테고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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