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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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마엔 오랜 성상을 고생과 역경속에서 지내온 연륜을 말해주듯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군데군데 계열에서 이탈해나간 치아와 또 불퉁 튀어나온 손마디.
손자녀석들과 어울려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마음 하나 가득 뿌듯한 고마움이 피어오르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건 어쩔 수가 없다.
6·25 동란때 큰 상처를 입고, 사촌까지 한집에서 혼자 키우시고, 그것도 모자라 외손녀·외손자까지 떠맡아 키워 이젠 그 외손녀가 출가해서 증손자까지 보셨다.
지금은 칠순이 가까와 기력도 많이 잃으셨지만, 그래도 아이들틈에서 항상 즐거운 표정이시다.
한밤중에도 업어달라면 싫은 내색 한번 안하시고 4살이 된 손자를 등에 업고 나오신다.
내 어린 시절도 늘 할머님의 테두리에서 사랑받고 자랐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지금은 출가해서 이렇게 내살림을 하고 있으니, 명절때 한번 제대로 찾아가 뵙지를 못하고 항상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기분이다.
조건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내가 철이 들면서부터는 그런 사랑이 내게 얼마나 큰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고, 꼭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있지만 쉽게 이루어지지가 않는다.
바람이 매몰차게 불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어저께 다른 자식들이 걱정이 되시는지 딸집으로 다니러 가셨다.
할머님이 왜 안오시느냐고 자꾸만 재촉하는 아이들과 동화도 읽어주고 집짓기도 하면서 오래된 청동화로처럼 항상 은은한 온기가 피어나는 어머님의 정이 그립고 또한 어머님에 대한 사람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막 떼쓰고 조르고 달려들던 내 아이들도 할머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분이란걸 멀지않아 깨달으리라 믿고있다.
어떻게하면 손자들에게 베푸는 사람의 반만큼이라도 어머님께 되돌려 드릴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유제희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 141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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