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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헴 ~ " 옛 사대부의 삶, 눈에 잡힐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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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600년 경에 제작된 ‘진성 이씨 족보’ .

진성(眞城) 이씨(李氏)는 조선시대의 손꼽히는 양반가다. 조선조가 낳은 큰 유학자인 퇴계 이황을 배출한뼈대 있는 집안으로 유명하다. 경북 안동에 뿌리내린 600년 이씨가의 내력은 곧 조선 사대부의삶과 생활을 증언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낡은 사진첩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양반의 기풍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일까.

조선 양반의 기질과 생활사를 지금 이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자리가 펼쳐졌다. 서울 새문안길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에 안동 600년 종가가 나들이왔다. '어흠!'.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지르는 기침 소리가 들릴 듯하다. 내년 2월 12일까지 열리는 '옛 종가를 찾아서'전이다. 진성 이씨 집안이 기증한 2500여 건 유물 가운데 110여 점의 유물을 골라 꾸민 기증유물 특별 전시장은 관람객을 잠시 과거 선비 집으로 공간이동시키는 우주선이 된다.

'ㅁ'자형 고택을 되살려 사랑방과 안방을 재현한 전시장은 세종조부터 최근까지 유서깊은 종가 사람들이 쓰던 손때 묻은 물품들로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 15세기 초반부터 안동 주촌(周村.두루마을)에 정착한 뒤 전통을 이어온 선비 정신이 담겨 있다.

경북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자리 잡은 진성 이씨 대종가. 조선조의 큰 유학자인 퇴계 이황을 배출한 조선조의 600년 명문 집안으로 앞마당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서있다.

눈길을 끄는 첫 유물은 세종과 세조 조에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禎)에게 세종 임금이 내린 '선산부사 임명장'이다. '국왕행보(國王行寶)'라는 세종 직인이 선명하다. 조선 초기의 교지(관직임명장)도 보인다. 임진왜란 전후한 시기의 종손이었던 이정회가 1577년부터 1612년까지 30년 넘게 쓴 일기 '송간일기(松澗日記)' 네 책도 흥미있는 기록이다. 짧은 메모 형식의 일기는 '오늘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내려 일정이 엉망이 됐다'는 식의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집안 대소사까지 적혀 있어 조선 사대부의 나날을 엿볼 수 있다.

고문서나 전적류뿐이 아니다. 사랑방에서 선비가 즐겨 쓰던 물품도 재미있는 볼거리다. 담뱃갑이나 서류함은 섬세하고 곱기가 이를 데 없다. 남정네가 썼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여리고 고운 심성을 느낄 수 있다.

안방을 중심으로 여성이 주도하던 종갓집의 가풍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도 많다. 집안을 지켜주는 신이라 여겨지던 성주를 모시는 성주 단지와 삼신 바가지는 큼직한 모양새가 듬직하다. 신부 집이 주관하던 사대부의 혼인 예절과 절차도 볼 수 있다.

이 특별전은 사연이 있다. 수백 년 어렵게 유물을 지켜온 명문가의 종손은 그 소중한 조상의 유품을 왜 박물관에 기증하게 되었을까. 들끓는 도둑 때문에 가문의 유물을 지킬 수 없어 차라리 박물관에서 보관해주었으면 한다는 종손의 푸념이 안타깝다. 02-724-011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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