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 제대로 돼야 제구실 … 이대로 시행 땐 국민들만 피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7호 06면

강신업 변호사(왼쪽)와 채명성 대한변협 법제이사가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위해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도착했다. [중앙포토]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교총 등은 법안의 졸속 통과에 항의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가장 강력히 비판했던 국회의원은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이다. 법안 표결에도 불참하고 본회의 법안 통과 직후부터 목이 다 쉴 정도로 비판의 목소리를 뿜어냈다. 그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김영란법 국회 통과]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쓴소리

 -법사위원장으로서 김영란법에 대한 입장은.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다는 법의 당초 취지는 십분 공감하고 (법안이) 통과된 건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법률이어야 제구실을 하는 거다. 이 법은 문명국가의 대원칙인 법치주의와 죄형법정주의가 상당히 침해돼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을 걸 알면서도 법사위원장으로서 여론에 떠밀려 통과를 막지 못했던 자괴감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본회의장에 안 들어가고 위원장실에서 TV로 표결을 지켜봤다.”

 -여론을 거스르면서 법을 비판하고 나섰다.
 “안 그래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대전의 내 사무실에 찾아와서 ‘너도 어디서 많이 받아먹은 것 아니냐’ ‘앞으로도 또 받아먹으려는 거냐’며 욕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뉴스 댓글에도 욕 천지고 당내에서도 분위기가 싸늘하다.”

 -법안 통과 과정을 설명해 달라.
 “2012년 김영란 당시 권익위원장이 처음 입법예고를 했다. 이후 행정부에서 논의를 거쳐 2013년 8월 정부안이 제출됐는데 이게 한참 후퇴한 법안이었다. 이걸로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나와 새정치연합 김영주 의원이 당초 원안을 베끼다시피 해서 수정안을 냈다. 그게 정무위에서 계속 계류되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부랴부랴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무위에서 위헌이니, 포괄적이니, 대상이 너무 넓으니 갑론을박했는데 지난 1월 통과된 정무위 안(案)을 보니 갑자기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했더라.”

시행령으로 보완하라는 건 무책임
- 그럼 정무위에서도 처음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 것 아닌가.
 “맞다. 지난해 정무위 간사인 김용태(새누리당) 의원과 TV 토론에도 나갔었는데 그땐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만 하자’고 얘기가 돼서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내용이 갑자기 바뀐 건가.
 “석연치가 않다. 직접 확인한 내용은 아니지만 청와대에서 오더가 떨어졌단 말도 돌더라. 정무위 안 나올 때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청와대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을 때다.”

 이와 관련, 정무위 법안소위원장인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여덟 번이나 김영란법 처리를 요청할 정도로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주문한 것은 사실”이라며 “청와대 수석들도 당정회의 때마다 법안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하도 재촉해 내용을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냐고 따질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적용 대상이 확대된 것은 여야 간 소위 논의과정에서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인 등도 모두 넣자고 해서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사위 심의 당시 분위기는.
 “위원들 모두 ‘문제가 심각하다’ ‘이대로 되겠느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여야 원내대표들이 와서 ‘일단 통과시키고 나중에 서둘러 고치자’고 했다. 빨리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회가 발목 잡는다’는 비난이 쏟아질 걸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여야 동료 의원들은 문제 있는 법이란 것에 다들 수긍했지만 ‘법사위원장이 잘 해봐’ 하는 식이었다.”

 -법사위원장 권한으로 통과시키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그 고민을 안 한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통과시키지 않으면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에게 직권 상정할 계획까지 짰다고 하더라. 또 국회의원 한 사람으로서의 입장과 법사위원장으로서 역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이 다르다 해서 다수가 하자는 걸 막으면 직권남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권을 다른 의원에게 넘기는 것도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내가 의사봉을 두들겼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제기된 문제는 추후 시행령으로 보완하겠다’는데.
 “무책임한 태도다. 법안 시행 후에 발생할 선의의 피해자는 어떡할 거냐. 국회가 엉터리 법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회피하자는 거다. ‘우리가 그렇게 엉터리는 아니에요. 시행령으로 보완하면 돼요’라는 건데 입법자로서 행정부에다 ‘시행령으로 알아서 보완하라’고 미루는 꼴이다.”

 -법안 발효로 예상되는 사회적 파장을 든다면.
 “이 법은 형법이다. 윤리강령이나 선언·경고가 아니라 처벌을 전제로 한다. 어떤 공직자나 기자가 다른 사람과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다고 치자. 그의 경쟁자나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고 신고하면 수사 당국은 법 저촉 여부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더치페이’ 했어도 이를 입증해야 한다. 친목 모임에서 선배나 돈 많은 지인이 밥을 사거나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사는 그런 일상적 행태가 다 걸린다. 무조건 N분의 1로 나눠서 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식사한 사실만으로도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소환 조사할 수 있다. 정무위 안의 부정청탁 조항을 보면 법적으로 허용되는 9가지와 허용되지 않는 15가지 사례가 나와 있는데 법률가인 내가 봐도 헷갈린다.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구분하겠나. 그러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자의적 집행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국민에 사기 치는 입법 횡행하고 있어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가 부정청탁 규정에서 예외로 빠졌다.
 “말이 안 된다. 정무위 안에서 여야 합의로 예외조항을 넣었다는데 정확한 경위는 모르겠다. 추측하진대 ‘우리 국회의원들이 민원도 받아야겠고 청탁도 받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법에 적용되면 어떻게 일하나. 그러니까 이것만은 빼자’는 식이 아니었을까. 비겁한 행동이다.”

 -요즘 국회의 행태를 놓고 ‘포퓰리즘 입법부’란 비판도 나온다.
 “공적 기구 중엔 가속 페달을 밟는 곳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조직이 있다. 행정부가 전자라면 국회는 후자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다른 생각들을 충분히 녹이고 숙성시켜야 한다. 특정 집단에 피해가 가거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돌다리도 두들겨보듯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마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김영란법도 여론이 그러니까 빨리빨리 통과시키자며 졸속 처리한 거고, 지난해 연말정산 관련 법안도 그렇게 생각 없이 통과된 것 아니냐. 우리 사회에서 브레이크가 작동 안 되고 가속 페달만 밟다가 발생한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그동안 실적 위주로 너무 많은 법을 만들어낸 것 아니냐.
 “요새 법률 만능이 횡행한다. 법만 만들면 해결된다는 식이다. 어처구니없는 예가 지난해 ‘유병언법(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이다. 그가 빼돌린 재산을 몰수 추징하는 내용인데 수사해보니 실적 하나 없이 대부분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다. 유병언이 죽어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모두가 그럴 줄 알면서도 대통령도, 법무장관도 통과시켜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해서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국민을 향해 눈속임하고 사기 치는 거다.”

 -통과된 김영란법은 어떻게 해야 하나.
 “김영란법도 1년6개월 후로 예정된 시행 전이라도 국회가 개정안을 내서 고칠 수 있다. 개정 땐 여러 전문가의 지혜를 모으고 국민에게 내용을 소상히 알려 공론화 과정을 튼실하게 거쳐야 한다. 개인적 의견으론 당초 취지에 맞게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만 대상으로 하면 된다. 이전에 당연시되던 일을 형사처벌하는 극약처방이기 때문에 그 정도만 해도 사회에서 상당한 정화 움직임이 일어날 거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