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콘서트의 꽃 ? 가수일까, 음향기사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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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인비저블(Invisible)’은 높은 자질을 갖췄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명성과 보상 대신 내적 목표를 지향한다. [사진 민음인]

인비저블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민음인
360쪽, 1만6000원

이야기는 한 잡지사의 작은 방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한때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사실 검증 전문가(fact checker)팀에서 일했다.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읽으며, 잘못된 사실은 없는지, 오류는 없는지 살피는 일이다. 여행담당 기자가 쓴 기사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제노바까지 운전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는 문장이 나오면 지도를 펴 확인한다.

“두 시간 반은 걸릴 것 같은데?” 저자는 문득 고개를 들고 동료를 살펴본다. 이들 대부분은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에 절반 이상이 제2 외국어에 능통한 실력자다. 하지만 독자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이들은 왜, 무엇을 위해 이 작은 방에서 이토록 맹렬하게 일하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이 책을 쓴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사회 곳곳에 숨은 ‘인비저블’을 찾아보기로 한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찬사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묵묵히 커튼 뒤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을 주목한다. 수술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취과 전문의, 그러나 수술이 성공했을 때 꽃다발을 받는 것은 정작 외과의다. 유엔총회의 동시통역사, 그들의 피 말리는 시간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다. 공항의 길찾기 표지판 디자이너, 공항을 오가는 이들은 승객이 탑승구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돕는 표지판을 만드느라 고심하는 이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만성적인 자기노출’의 시대다. 다들 자기 홍보의 압박에 시달린다. 나를 브랜드화해, 널리 광고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의 일상화는 도드라진 증거다. 2009년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소셜네트워크를 자기 홍보와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자기노출이 개인의 행복과 성공으로 이어질까. 저자의 답은 ‘노(No)’다. 알맹이 없이 자기PR에만 열을 올리다 실패한 여러 사람들의 사례를 든다. 그게 아니라도 이미 많은 사람이 지쳐 있다. SNS에 열중하는 사람일수록 우울증을 자주 앓는다는 실험결과도 있지 않은가.

 자기PR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비저블’을 만나면서 저자는 이들이 일과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일단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다. 연연하지 않는다기보다 오히려 불편해한다. 어떤 이들은 이 책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도 극구 사양했다. 대신 이들은 맡은 일을 완수하는 것에서, 일에 몰입하는 순간이 주는 기쁨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롤링스톤스·레드제플린 등 전설적인 스타의 음향을 담당해 온 녹음기사 앤디 존스는 어느날 밤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에게 빌 와이먼 대신 베이스 주자가 돼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존스는 믹 재거에게 “당신한테는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보일지 모르지만…”이라고 답한다. 롤링스톤스의 멤버가 되라는 엄청난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성은 치밀성이다. 탁월함을 지향하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하고 완벽하게 해낸다. 세상에 없는 꽃향기를 찾기 위해 무인도의 밀림으로 들어가는 조향사의 노력은 탁월함을 향한 강한 열망을 보여준다. 인비저블의 마지막 특징은 책임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의 결과만을 누리려 하고 정작 책임을 떠맡는 것은 기피하는 반면, 이들은 막중한 책임을 즐기는 성향을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인비저블이 부각되는 순간은 그들이 무언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다. 롤링스톤스의 공연 무대에서 음향 사고가 난다면, 그제야 사람들은 이 콘서트의 음향 담당자가 누군인지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책은 이렇게 숨은 영웅을 나열하며 이들의 성취를 예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비저블이 일하는 현장의 긴장감과 갈등을 묘사하는 저자의 필력이 탁월하다. 고층건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구조공학자를 따라 87층까지 지어진 상하이 타워에 올라간다. 철근과 널빤지를 제외하고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바닥. “그렇다. 바닥을 짓기 전에는 바닥이 없는 것이다.”

 기타 테크니션 플랭크를 따라 들어간 록그룹 라디오헤드의 독일 랑세스 아레나 공연현장의 숨막히는 열기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더불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심리학·사회학 등의 연구결과를 적절히 소개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확인해두자. 저자가 줄곧 말하는 인비저블이란,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한 수행이나 훈련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말한다. 이를테면 ‘장인(匠人)’ 같은 이들이다. 단지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다 인비저블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책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이유는 분명하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실제가치보다 훨씬 과장돼 있다. 그러니 남의 관심을 갈구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보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기쁨과 충족감을 준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지금 당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S BOX] 뉴욕 양키스, 유니폼에 선수 이름 안 쓰는 까닭

1950년대 이전만 해도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유니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선수 개인보다 팀의 정체성을 중요시했고, 이런 생각에 따라 모든 구단이 ‘선수 이름 없음(No Name on Back·NNOB)’ 정책을 유지했다. 60년대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가장 먼저 선수들의 유니폼에 이름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1800년대 리그가 시작된 후 이어져오던 NNOB 정책을 바꾼 것이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메이저리그의 거의 모든 야구팀이 화이트삭스를 따라 선수들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겼다. 스포츠경기의 TV 중계가 확산되면서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 홍보하는 새로운 마케팅 방안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팀의 성적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가장 많은 우승 전적을 보유한 양키스는 선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지 않는 NNOB 정책을 고수한다. 홈팀 유니폼이 NNOB인 레드삭스도 수십 년간 악명 높은 저주에 시달리다 지난 10년 사이 월드시리즈에서 두 번 우승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2000년 홈팀 유니폼에 NNOB를 도입한 이후 월드 시리즈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당시 자이언츠 구단주였던 피터 매고완은 “자이언츠를 선수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 홍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비저블』의 저자 즈와이그는 이런 NNOB 정책의 효과가 자기PR을 멈추고 외부의 이목에 연연하지 않을 때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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