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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어린이집에 펄럭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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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원래 폐쇄회로TV(CCTV)에 반대했다. 기계를 힐끔거리는 사랑이 우스꽝스러웠다. 도우미·보육교사가 아이에게 잘해주는 것도 CCTV 때문일 것이고, 때리지 않는 것도 그 작은 카메라 덕분이라고 믿고 살긴 싫었다. 나중엔 그들이 우리 아이를 예뻐하는 건지, CCTV를 사랑하는 건지 헷갈릴 것 같았다.

 흐릿한 화면 하나를 들여다봤던 1월을 떠올려본다. 얻어맞고 나동그라지는 아이를 보며 숨을 훅 들이마셨다. ‘꼭 내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CCTV를 환영하진 않았다. 폭력을 막지도 못하고 기록만 했던 무생물의 무기력함이 싫었다.

 어린이집마다 CCTV를 단다는 소식도 들었다. 당연히 그리 될 줄 알았다. 그래서 CCTV에 대한 입장은 변함없이 여유로웠다. 당시에 누가 물었다면 이렇게 답했을 거다. “설치가 의무화되면 사고방지 효과는 있겠죠. 그래도 제가 나서서 달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꽤 멋진 대답이라고 자부했을 거다.

 그때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아 다행이다. 지금 보니 숨고 싶을 정도의 어리석은 답변이다. “그거 남의 일 아니냐. 나와 내 아이는 상관없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바닥에 쓰러진 아이가 진짜 내 아이 같았다면 CCTV 설치 의무화도 나의 일 같았어야 한다. 나는 또 법안이 당연히 통과될 것이라고 믿었던 게 아니다. 이것도 그저 내 일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이 깨달음은 3일 국회에서 날아온 뉴스를 본 후 얻었다. 어린이집 CCTV 의무설치가 무산됐다. 반대·기권표를 던진 국회의원 87명은 내 많은 정체성 중 ‘엄마’라는 항목을 끄집어냈다. 나는 엄마로서의 나, 어린이집 원생으로서 내 아들이 세상에서 잊힐 수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 우리 존재는 어린이집 원장들에 비해 미미했다. 이게 다 내가 가만히 구경만 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제 CCTV는 내 일이다. 두 달 전 CCTV에 찍힌 건 다른 집 아이였지만, 국회에서 무시당한 건 나와 내 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CCTV를 원한다. 자존심을 걸고 간절히. 이 기계가 만능이 아니라는 건 아직도 잘 안다. 오히려 사람 사이의 신뢰가 방해받을지 모른다는 것도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3일 이후 결론은 확실하게 바뀌었다. 나는 이제 어린이집마다 CCTV가 훈장처럼 걸려 있기를 바란다. 깃발처럼 펄럭이진 못해도 결연하게 매달려 있으면 좋겠다. 나와 내 아이가 무시해도 될 우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말이다. 이제 부모들에게 CCTV는 한낱 기계가 아니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