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위주 표기 채택은 진일보|새「로마자 표기법」문제는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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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교부가 13일 내 놓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59년에 제정돼 그 동안 사용해온 「한국의 로마자 표기법」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졌던 취약점을 25년만에 보완 개정한 것이다.
우리 글의 철자법을 로마자의 알파벳으로 정직하게 옮겨 적는 현행 표기법은 이를 우리말로 옮길 때는 편리했으나 외국인이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불편이 있었고, 따라서 39년 미국인「매큔」과 「라이샤워」가 제정한 MR식이 일부에선 혼용돼 왔다.
새로 마련한 표기법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이를 위해 지금까지의 정자법을 버리고 표음주의를 채택, MR식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이다. 문교부는 새 표기법에 따른 용례 집을 1월중에 만들어 배포하고, 개정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문제점이 있더라도 88년 올림픽 이전에는 고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건설부가 지난해부터 MR식으로 모두 고쳐놓은 도로 표지판은 새 표기법에 따라 표기를 부분적으로 수정해야 하게됐다.
현행 표기법이 일반화되지 못하고 심지어 정부 부처사이에서도 이를 외면한 채 MR식을 고집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령 속리산을 Sogri Mt으로 표기하지만 외국인이 속리산으로 읽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속구리」산 정도로 읽고, Doglibmun을 독립문과 연결시키기 어려운 「독구립문」으로 읽을 때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은 어려워진다.
담배 Geobugseon도 외국인은 결코 거북선으로 읽으려 들지 않고 「조박산」정도로 부른다. 이 같이 발음과 일치하지 않는 표기는 「값과」「젊다」등을 표기할 때 Gabsgwa, jeolmda 등에서도 나타난다.
문교부는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79년11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안을 마련했으나 10.26으로 흐지부지됐다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서둘러 이를 보완한 개정 표기법을 내 놓았다.
이 개정 표기법은 그 동안 학술원을 통해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각계의 의견을 듣는 여론수렴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확정됐다. 따라서 확정 후 상당한 논란의 여지도 없지 않다. 우리말의 음운체계가 외국어와는 전혀 다른 데가 있어 이를 로마자로 옮기는데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를 ?로 표기하고 「으」를 ?로 적도록 했는데 이는 현행의 eo나 eu보다 원음에 가까울지는 모르지만 알파벳 위의 반달표(˘)는 우리자신은 물론이지만 외국인에게도 생소하다. 「어」와 「으」발음의 알파벳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약속으로 MR식에서 따온 것이지만 인쇄나 타이프 등 표기에 큰 불편이 뒤따를 것이 틀림없다.
ㅋ·ㅌ·ㅍ·ㅎ을 나타낼 때 쓰는 어깨 점(')도 마찬가지다. 일일이 k'·t'·p'·ch'로 쓴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개정표기법은 이 같은 불편한 방법을 도입하면서 필요하면 부호를 생략할 수 있다고 예외를 인정했지만, 그럴 경우 또 다른 혼동이 올 수도 있다.
새 표기법으로 정주와 청주는 Chongju와 Ch'ongju가 된다. 불가피 할 때 어깨 점을 생략한다면 같은 곳으로 되고 만다. MR식으로 표기돼 있는 군사지도에 따라 6.25때 공군조종사가 청주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정주에 폭탄을 퍼부었다는 얘기가 있다.
긴급상황에서 어깨 점을 확인하기도 어렵지만 이를 생략할 경우 생길 수 있는 혼란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새 표기법은 국어의 철자법을 무시하고 발음주의를 택했기 때문에 로마자를 우리말로 옮길 때 정확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독립문은 Doglibmun으로 표기하면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새 표기법의 Tongnimmun은 다시 한글로 표기하면 「동립문」으로 밖에 환원할 수 없다. 텔리타이프가 널리 보급되는 시점에서 새 표기법의 환원성 결여는 생활에 큰 불편을 줄 것이 틀림없다.
가령 외국에 거점을 둔 국내회사가 급하게 필요한 상담내용을 직원출근 전에 보내라고 했을 때 로마자로 표기한 내용이 표음주의로 쓰여있다면 국어로 옮겨 쓰는데 어려움은 물론, 부정확한 의사소통의 우려도 없지 않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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