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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마지막 상궁 김명길 할머니 별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조선조「마지막 상궁」김명길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93세.
서울 원서동 86의16 비원 골목의 11평짜리 초라한 한옥에서 그동안 언니의 병구완을 해왔던 동생 김순이할머니(89)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13일 상오 4시 김상궁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백설이 소복이 내린 겨울새벽 왕조의 영화와 몰락을 지켜 보았던 김상궁은 눈을 감으며 90을 바라보는 나이로 자신을 병간호 해온 아우에게 애뜻한 연민의 정을 보냈다.
『한점 혈육도 없는 너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가슴 아프다.』
김상궁의 마지막 유언. 김상궁은 자신이 죽거든 하루만에 화장으로 장례를 치러주도록 당부하고는 눈을 감았다.
김상궁은 지난 11일 92번째 생일을 맞았으며 다음날인 12일에는 찾아온 동회직원으로부터 마지막 주민등록증을 경신해 받았다.
김상궁이 돌아간뒤 동생 순이할마니가 마련한 빈소엔 13일 상오까지 한사람의 문상객도 없었다. 70년을 몸담았던 궁중에선 낙선제의 이방자여사가 비서를 통해 부음을 확인했다.
순이할머니는 언니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화장한 뒤 평소 다니던 삼골동 칠보사에 유해를 봉안할 예정. 하루만에 장례를 치러달라는 유언은 따르지 않고 3일장으로 15일 장례를 모시기로 했다.
김상궁은 1892년 서울 사직동에서 당시 평리원 고등관이던 김양규씨의 3남2녀 가운데 세째로 태어나 15세때 어머니 청주 한씨가 사주점괘에 따라 순종비 윤씨의 시녀로 궁중에 들여 보낸것을 계기로 70년 동안 상궁의 일생을 살았다.
왕조 몰락의 온갖 풍상을 겪으며 해방후까지 창덕궁 낙선제에서 윤비를 모시다 66년 윤비가 돌아간 뒤 덕혜옹주를 다시 모시다 76년 노령으로 기동이 불편해지자 궁을 떠나 홀로 된 친정여동생 순이씨와 함께 살아왔다.
궁을 떠난 뒤에도 한달에 한번 낙선재를 찾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김상궁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부쩍 나빠져 8월부터 병상에 누웠었다.
자매가 모두 혈육도 없이 동사무소에서 주는 양곡·연탄으로 어렵게 생활해온 김상궁은 그러나 70년 궁중생활에서 몸에 밴 예의범절과 법도는 병상에 누워서 까지도 지켜 이제는 사라진 「조선조의 마지막여인」으로 꼽혀왔다.
김할머니의 연락처는 (763)2339. <도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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