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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맹국에서 최초로 자국 대사 테러 당한 데 경악

중앙일보

입력

미국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자국 대사가 동맹국에서 피습당한 데 대해 '규탄' 논평으로 충격을 드러냈다. 미 국무부는 마크 리퍼트 대사가 습격을 당한 뒤 1시간 30여분 만에 '주한미국 대사가 피습당했다’는 제목의 공식 논평을 내 “우리는 이 같은 폭력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발표했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우리는 리퍼트 대사가 서울에서 연설에 나서던 중 공격을 받았음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 정부의 추가적인 입장에 대해선 “현재로선 더는 밝힐게 없다”고만 했다. 워싱턴의 주미한국대사관 측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한 소식통은 “미국은 지난 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 대사가 피습당해 사망한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며 “외교관 안전에 대해 극히 민감한 상황이라 그 충격을 논평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몰상식한(senseless) 공격을 받은 리퍼트와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다”며 “그를 돌보는 한국인들에 감사하다”고 올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공식 트위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리퍼트 대사와 통화해 리퍼트 대사와 부인 로빈에 대한 염려과 기도를 전하고 쾌유를 기원했다”며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까지 공개했다.

이날 주미한국대사관은 서울·미국 국무부 등과 긴급 연락을 취하며 사실상 비상 체제로 움직였다. 한 소식통은 “사건 발생 이후 거의 분초 단위로 미국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는 물론 리퍼트 대사의 상태 및 치료 상황과 수사 진행 상황, 진상 규명 및 처벌 의지를 알렸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주미대사관의 한 인사는 “악재다. 악재”라며 한ㆍ미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외교 채널에선 리퍼트 대사 피습으로 정부 차원에서 한국 내 미국 인사 보호에 대한 문제가 제기됨은 물론, 미국의 일반 여론이 한국을 반미 성향이 숨어 있는 치안 부재국으로 평가절하할 가능성까지 걱정하고 있다. 대사관 고위 인사는 “불필요한 오해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비상한 관심과 우려를 나타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5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와 피해를 당한 리퍼트 대사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같은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를 피습한 김기종씨는 5년 전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주한 일본 대사에 공격을 가했던 인물이다. 스가 장관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다”며 “한국 정부에 대사관 등에 대한 경비를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한ㆍ중ㆍ일 3개국 협력을 위해서도 역사 인식 문제에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발언이 이번 사건의 동기가 된 것 아니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대해 “연례적인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하는 반미 세력의 소행”이라고 전했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전하며 “용의자 김씨가 반미 감정 때문에 저지른 범행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한국의 일부 좌파 활동가들은 한미 군사 훈련이 남북간의 긴장을 높인다고 비판해왔다”고 전했고, AP통신도 “일부 한국인들은 미군을 통일의 장애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안보전문매체인 워싱턴 프리비컨은 “이번 사건은 셔먼 차관의 발언 논란으로 반미 시위가 확대되는 시점에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언론은 김씨의 이번 소행이 셔먼 차관의 발언과 관련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의 경호와 보안 문제도 지적됐다. CNN은 “어떻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괴한이 대사의 얼굴에 칼로 공격을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부실한 경호를 비판했다.

워싱턴ㆍ도쿄=채병건ㆍ이정헌 특파원, 서울=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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