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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7500원짜리 밥, 현금 10만원 … 직무 관련 땐 지금도 처벌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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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인·사립학교 교원이 ①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때만 과태료를 물리고 ②100만원을 초과(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할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소액 수수는 기존 형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데 굳이 김영란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직무 관련성이 없는 지인과 여러 차례 식사하거나 술자리를 갖는 것만으로도 법 위반에 해당하는 액수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만인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실제로 검찰은 지금까지 공직자가 받은 금품 액수가 적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입증된다고 판단하면 형법상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해왔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뒷돈을 받고 내부 성능시험보고서 등을 납품업체 AVT에 넘겨준 혐의(부정처사후 수뢰 등)로 한국철도시설공단 황모(48) 궤도부장을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1만7500원짜리 식사 접대를 받은 것도 범죄 사실에 포함시켰다. 공단 내부 자료를 넘기는 대가로 접대를 받은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 부장 공소장에 붙은 ‘범죄 일람표’에는 ▶2014년 1월 24일 대전 S식당 1만7500원 ▶같은 해 4월 1일 C참치전문점 5만5000원 ▶5월 22일 M복집 4만5000원 등 소액 접대들이 줄줄이 적혀 있다. 그 결과 그에게는 2013년 11월~2014년 5월 10차례에 걸쳐 총 149만2000원어치 향응 접대를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황 부장이 100만원의 현금도 받았다”며 총 249만2000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말 통영함·소해함의 장비납품 계약과 관련,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방위사업청 소속 최모(47) 중령도 다르지 않다. 검찰은 2012년 서울 강남 B유흥주점에서 미국 장비업체인 해켄코의 김모(40)씨에게서 받은 4만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최 중령이 2011년 10월~2013년 8월 28차례에 걸쳐 받은 현금(총 1113만원) 중 200만원, 500만원 받은 것을 빼면 26차례가 모두 10만~14만원의 소액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자에게서 100만원 이하의 소액을 받더라도 대가성을 불문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행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도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들어줬는지, 즉 엄밀한 의미의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통상적인 관리 차원에서 뒷돈을 받은 경우도 뇌물죄로 처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김영란법의 처벌 대상에 포함된 사립학교 교사의 경우 기존에도 사립학교법 55조에 따라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뒷돈을 받으면 동일하게 처벌받아왔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특별법(김영란법)은 일반법(형법)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인데 별반 차이가 없고 부작용만 크다면 차라리 형법의 뇌물 수수 조항에 ‘대가성에 관계 없이 처벌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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