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후원금, 지역구 민원 쏙 빠져 … 속으로 웃는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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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

#1. ‘김영란법’이 통과된 3일 국회 본회의장 주변.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당직자는 “김영란법 때문에 시끄럽지만 의원들은 화장실에서 웃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법 적용 대상이 언론인·사립학교 교원으로 확대되면서 위헌 논란까지 일고 있고, 공직자들은 직무 관련성이 없는 돈도 100만원이 넘으면 처벌되게 됐지만 사실 의원들이야 김영란법의 무풍지대다. 정치후원금은 김영란법과 무관해 금품 수수 대상이 아닌 데다 앞으로 금지되는 부정 청탁의 유형에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은 쏙 빠졌다. 오히려 감시 역할을 하는 언론을 김영란법 규제 대상으로 묶어 두고 ‘거추장스러운’ 스킨십도 줄일 수 있게 됐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기까지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2. 김영란법 통과에 방아쇠를 당긴 이틀 전(1일) 새누리당 의원총회. 법안 통과 여부를 놓고 끝장토론을 벌이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법안을 통과 안 시키면 다음해 있을 총선에서 필패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우리 당이 뒤집어쓴다”고 거들었다. 결국 여당 의원들이 의식한 것은 ‘표’였다.

 권은희 대변인은 의총 후 “지금 문제가 있다는데도 여론에 떠밀려 개선하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 자체가 ‘법률 포퓰리즘’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3. 새누리당 의총 다음날(2일) 공을 넘겨받은 새정치연합 의원총회.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온 최민희 의원은 “언론 자유에 침해가 될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법안 때문에 언론 자유가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새누리당과 똑같았다. 의총에 참석한 또 다른 의원은 “최 의원의 말에 동의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분위기에 눌려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최 의원은 3일 본회의 표결 때 기권했다.

 #4. 야당 의총 후 열린 여야 원내지도부 협상. 마라톤협상 중인 협상장으로 서류 뭉치가 전달됐다. 김영란법안의 입법 취지와 쟁점이 요약된 문서였다. 새누리당 사무처 관계자는 “갑자기 기초자료를 가져오라고 해서 전달했다”며 머쓱해했다. 김영란법안에 대해 100%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협상이 이뤄졌다는 얘기였다.

 오후 11시쯤 나온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에게 “과잉 입법이란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선 안 되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3일 여야는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다.

일부 의원은 이 법이 시행되는 2016년 9월이 되면 ‘제2의 연말정산 사태’가 되풀이될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정무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당장 내년 추석이면 백화점 선물코너가 한산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행부터 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겠다는 의원들에게 민생이 실험대상이냐고 묻고 싶다.

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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